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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Sep 11. 2021

그곳은 지금도 아름다울 거야

<미드나잇 인 파리>의 명대사

쌓여가는 빨랫감, 먼지 가득한 너저분한 집안 꼴, 따라가지 못하는 전공수업,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학부 유학 시절은 매사 고난이었다. 햄버거를 쑤셔 넣어 끼니를 대충 때우고 집과 학교만 오가며 공부에 매달렸지만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왜 이렇게 모든 게 힘들지?' 것도 곧 지나가리라는 희망은 또 다른 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제대로 해결되는 게 하나 없이 말 그대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시간이 수록 해지기는 커녕 결되지 못한 문제만 산더미처럼 쌓이고 또 쌓여 갔다. 그 시절엔 내일이 온다 해도 바뀔 것 같지 않고, 이 보이지 않는 터널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기분이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멤버십 카드 하나 만드는 것부터 면허 따, 차량을 구입하는 절차조차 여느 사소한 일조차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 나한테 왜 이래?' 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탁기가 고장 난 것도,  타이어가 바람이 빠져 사고가 날 뻔한 것도, 신경 쓰이는 주변 인간관계까지 온통 나를 지치 하는 것 투성이었다. 왜 난 하나도 이룬 게 없을까? 공부만을 위해 다른 건 제쳐뒀는데 그렇다고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은  고달프기만 한 걸까?


저 멀리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던 어날, 일주일치 장을 본 후 두 손 가득 식료품을 들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  저만 이렇게 힘든 거죠? 버티면 좋은 날 오는 건가요?'라 신을 원망할 무렵, 집 바로 앞에서 장본 비닐이 다 터져버렸다. 터져버린 계란과 엉망이 된 재료들을 보니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도 함께 터졌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뜻대로 안 풀리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유학 온 걸 후회했지만, 또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되돌아갈 수도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 시절이 참 아름답고 위대했었지 <미드나잇 인 파리>


약혼자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작가 길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가 평소 선망하던 1920년대 예술가들과 조우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20년대로 떠나는 주인공은 작품을 통해 동경하던 예술가와 꿈같은 만남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결혼 전 방황하던 길은 인생은 너무 알 수가 없다며 본인은 작가가 되길 원치 않았다 고백한다. 이에 애드리아나는 인생은 너무 빠르며 소란스럽고 복잡하다며 그를 위로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둘은 다른 차에 올라타, 시간을 거슬러 그림으로만 본 '벨에뽀끄 시대(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에 다다르게 된다.


2010년에서 온 길은 현재를 벗어나 황금시대로 가고 싶어 1920년대에 도착다. 1920년대가 현재인 애드리아나는 벨에뽀끄 시대가 파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시절이라 칭찬하며 또 다른 시간여행을 제안한다. 벨에뽀끄 시대 때 만난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마저 현세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으며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가 있던 르네상스 시대가 더 낫다고 말한다.


If you stay here though, and this becomes your present then pretty soon you'll start imagining another time was really the golden time. Yeah, that's what the present is. It's a little unsatisfying because life's a little unsatisfying.  당신이 이 시대에 남아서 이게 당신의 현재가 된다면, 곧 다른 시대가 황금기였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반대로 지나 온 칭기즈칸 시대를 동경할지도 모른다. 2010년에서 온 길은 자신이 갈망하던 황금기의 작가들이 현시대에 만족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대를 풍미해온 위대한 작가가 됐던 평범한 누구가 됐던, 본인이 속해있는 현실은 늘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머지않아 시간이 흘러 현재도 과거가 되면 그 시절이 좋았다고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현재란 그런 것이다. 지나온 과거보다 못하다 불평하게 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보다 빛나지 않아 보인다.

지금 이 황금시대가 불만족스럽다고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미래의 나는 '그때가 좋았지'하며 현재를 그리워할 것이다


허나 힘든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혼자 사는 재미도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밥 한 끼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던 적도 있다. 금요일 친구들과 한주 버티느라 수고했다며 시원한 맥주로 회포를 풀도 하고, 광대한 대륙을 여행하는 로드트립의 즐거움도 있었다. 엄마 거위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거위 떼들을 보며 아무리 바빠도 차를 멈춰 세워 흐뭇하게 바라본 적도 있다. 팍팍한 현실 직장살이에 찌들어 보니 그 청춘시절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느끼게 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시간에 굶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그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넘치는 과제에 파묻혀 제대로 한 끼도 못 먹은 나날들. 무언갈 해도 끊임없이 불어나는 일더미 속에 파묻혀 고군분투하던 내가 이제 보인다. 그 시절이 지나 직장인으로 돈을 버는 지금에서야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면 됐던 학창 시절이야말로 황금기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오랜 친구와 과거를 회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사회·기술·문화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2000년대를 그리워한다.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잊을 수 없는 2002년의 월드컵과 삐삐를 벗어나 폴더폰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멋진 신세대가 된 그 시절. 노래방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목놓아 신나게 탑골공원 노래를 부르던 그때. 친구들과 장기자랑을 위해 비디오가 늘어져라 열심히 한 곡을 연습한 그 시절을 떠올리니 마냥 웃음과 그리움만 새어 나왔다.


코로나로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2021년의 우리는 코로나 전의 마스크 없는 일상을 그리워한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렇지 못한 후에야 느끼는 것이다. 인파에 치여 터덜터덜 걸어가던 여느 등굣길이나 출근길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깨닫게 되고, 친구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치킨에 맥주 한잔하며 회포를 풀던 그 시절도, 코로나로 자유롭지 못한 이제야 그리운 황금기가 되버린다.

   

우리는 현재를 조금 불만족스러워한다. 현재 가진 것에 대해선 당연한 듯 여겨 그 시간이 흐르면 황금빛으로 바뀐다는 걸 현재가 지나야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 순간과거가 되고 흐릿해지면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작가인 길은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과거에 살았다면 행복했을 거란 환상을 없애야 한다는 사실을 시간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삶은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그 빛을 보기 힘들다. 좀 더 멀리 떨어져야 그 얇은 빛줄기 하나로 시작해 점차 오렌지 빛으로 덮인 화려한 황금기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황금기 의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이 시간이 지나야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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