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가 연락이 왔다. 아직도 근처 동네에 살긴 하지만 각자의 바쁜 일정으로 자주 보기 힘들었던 친구다. 오랜만에 연락을 준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무슨 일인가 궁금해 만나보니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 박사과정으로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줬다. 축하할 소식과 함께 앞으로 친구를 자주 보겠다는 들뜬 마음으로 나갔다. 그녀의 새로운 시작에 진심으로 축하하며 밥도 사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 학기의 시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어느 날, 친구가 큰일이라며 급하게 점심때 보자 했다. 들어보니 박사과정 수업이 너무 힘들고 나이 들어서 공부하기가 힘들고 다른 학생들은 어려 잘 따라가는 것 같은데 본인만 못 따라가겠다며 힘들어했다. 온 힘을 다해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또 잘할 수 있다고 용기도 북돋아 주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그녀는 울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고 학내라 지나가던 직원들이 무슨 일인지 쳐다보기도 했다.
그녀의 고민은 오늘이 수업료 환불 마지막 날인데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첫 학기이고 또 오랜만에 공부하는 친구가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적응하면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밖에 내가 할 건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그녀는 점심시간이 지나 연구실로 돌아갔다.
몇 주 후 그녀가 다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진정이 되어 훨씬 평안한 모습이었다. 지도교수님과 상담도 했으며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다시 보여 다행이었다. 이제 본인의 고민거리가 줄어든 그제야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업무 때문에 나도 힘든 나날을 보내왔었다. 조심스레 상사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는데 그 부분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친구는 답하길,
그런 건 모르는 게 약이야. 그런 걸 왜 알아냈어.
잉? 그걸 알아낸 내 잘못이라고? 내가 잘 못 알아듣게 설명했나? 일하다 보니 상사의 안 좋은 모습도 알게 된 건데 그런 걸 알아낸 나의 잘못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고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넘겼다. 그래도 친구가 예전보다 훨씬 더 밝은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컨트롤 본부 나와라 오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가 있다.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들이다. 11살 주인공 라일리의 기억은 각자 색깔의 구슬로 저장되고 매일 밤 쌓인 기억은 기억 저장소로 보내진다. 그중 핵심 기억은 라일리의 기억 속 가장 중요한 일의 기억들로 관련된 성격의 섬을 만든다. 이 성격의 섬들이 모여 라일리의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수만 번씩 변하는 감정은 우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 지시에 달려있다. 이사할 새로운 예쁜 집으로 상상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낡은 집을 보자 라일리는 실망한다. 라일리가 기쁘기만을 바라는 기쁨이는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려 엄마 아빠와 새로운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슬픔이가 행복했던 기억에 손을 대자 기쁜 기억은 슬픈 기억으로 바뀌게 되고 감정들은 슬픔이를 나무란다.
이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는 여느 때보다 바쁘게 감정 신호를 보낸다. 슬픈 기억을 없애려는 기쁨이가 슬픔이와 다투던 중 실수로 이 둘은 본부를 이탈하게 된다. 엄청난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머릿속 세계에서 본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기쁨과 슬픔이 본부에 없으니 옛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버럭 하며 그동안 쌓아온 우정섬이 무너지게 된다.
Goodbye, friendship, Hello, loneliness.
(우정아 잘 가, 어서 오렴 외로움아.)
본부로 가는 튜브를 발견한 기쁨과 슬픔은 달려간다. 슬픔이가 다가오자 핵심 기억이 슬픈 기억으로 바뀌는 걸 본 기쁨이는 라일리가 행복해야 한다며 슬픔이를 두고 혼자 가게 된다. 마지막 하나 남은 가족섬마저 무너지게 되고 기억 쓰레기장으로 떨어진 기쁨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기쁨이가 기억해낸 기쁜 기억은 아빠 엄마의 위로 덕분인데 그 위로는 슬픔이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슬픔으로 인한 위로였기 때문이다. 본부로 돌아온 기쁨과 슬픔은 이제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핵심 기억을 만들어 낸다. 여러 감정이 섞인 새로운 핵심 기억들과 성격의 섬들이 만들어지고 라일리의 감정도 풍부해지며 감정을 컨트롤하는 제어판도 더 넓어지게 된다.
기억 속 가장 중요한 일의 기억들로 이뤄진 핵심 기억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인사이드 아웃
친구보다 외로움이 더 좋다
연구에 집중한 친구는 이제 안정을 찾았는지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바쁜 스케줄로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본인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기쁜 소식에 우린 다시 만나 저녁 식사를 했고 안타깝지만 결혼식이 해외출장과 겹쳐 갈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축의금 봉투를 건넸다.
출장을 다녀온 후 못 간 결혼식이 궁금했고 친구가 신혼여행을 갔다 와 평온을 되찾으면 한번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통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신혼 초라 얼마나 인사드릴 때도 많고 바쁘겠어? 기다려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기다렸지만 가을에 결혼한 친구의 연락은 어느새 해를 넘겼다.
새해가 되어 친구에게 새해인사를 빌미로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답이 없었고 읽기조차 하지 않았다. 새댁이라 바쁘겠지라며 나중에 학교 오면 보려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 시작한 새 학기 무렵 갑자기 친구가 궁금해 밥이나 먹자고 연락하려 카톡을 열었는데 1월 1일에 보낸 카톡이 아직도 읽지 않음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뭐지? 번호를 바꾼 건가? 접점을 가진 친구도 없었기에 물어볼 친구도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직도를 살펴보니 아직 학생으로 다니고 있는 듯했다. 많이 바쁜가 하고 나를 다독일 무렵 함께 식사할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는 나의 감정은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뀌었다. 정말 나를 차단한 걸까?
곱씹어보니 친구는 본인이 힘들거나 지칠 때 연락을 해 나오라고 했다. 준비하는 공부가 힘들다 투정 부리고, 남 밑에서 일하긴 싫어 취업하긴 싫다는 징징을 털어놓을 때만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이자 나의 어릴 적 핵심 기억에 있는 친구였기에 이해하려 했고 또 기다림으로 우정을 보답하려 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심리학 책을 꺼내 읽어보니 친구를 지칭한 설명과 문장이 보였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도움을 청할 땐 쏙 빠지는 사람이다.
당신이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도 당신의 조언을 하나도 따르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넋두리와 주장을 쏟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함께 있을 때 자꾸 힘이 빠지고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당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모른다. 좋은 일이 생겨도 실망하거나 무관심하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이런 특징을 가진 매사 피곤하고 헛헛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신의 '멘탈 뱀파이어'일지 모른다. 만나면 이상하게 기운 빠지게 하고 함께 있으면 눈치를 보게 되며 이러한 기분이 반복된다면 관계마저 위태로워진다.
혹시라도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참아주지 말고 단호하게 버리고 가길 충고한다. 존중받지 못한다면 존중할 필요도 없으니깐.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부정적인 기운을 뿜으며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슬픈지도 모른 채 관심을 주지 않는 관계엔 굿바이를 외치려 한다.
'그래도 알아온 세월이 얼만데, 분명 연락 못하는 사정이 있었을 거야, 바쁜 일 끝나면 연락하겠지.'라는 생각은 오직 나만의 추측과 기대임을 깨달았다. 이제 내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친구란 이름의 멘탈 뱀파이어에게 안녕을 고하려 한다. 잘못된 관계라면 과감히 멈추고 차라리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이 고독을 즐기려 한다. 오랜 친구여, 안녕! 외로움아, 어서 오렴!
멘탈 뱀파이어에게 안녕을 고하면 오랫동안 앓던 편두통이 사라질 수도 있다 @Anthony Tran, Unsplash #심리상담 #심리학 #마음 #내마음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