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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Dec 13. 2022

구로동 주식클럽 : 5화

주식 우울증에 걸린 증권맨


“이 차장님, 오늘 일찍 퇴근하세요?”


모든 직장인이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튀어 오를 금요일 오후 여섯 시, 여의도 H투자증권의 이영준 차장 역시 잽싸게 회사를 나섰다. 늘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그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데스크 직원 박상미의 발랄한 목소리에 앞만 바라보고 서 있던 영준은 고개를 돌렸다.


“응, 상미 씨. 뭐, 오늘은 장도 안 좋고 더 있어봤자 투자자들 컴플레인 전화나 오겠지.”


“장 대표님하고 통화하셨어요? 전화 여러 번 하셨던데….”


상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영준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하… 했지. 오늘만 세 번 통화했어. 혹시 그분 데스크 직원들한테도 욕하고 막말하고 그래요?”


“네,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심하세요.”


“장 대표한테 작년에 우리가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 10억 원 넘게 수익 낼 때는 귤 한 상자 보내놓고 이번에 3000만 원 손해 봤다고 이렇게 들들 볶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상미가 안쓰러운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얼른 들어가 쉬세요, 차장님.”


영준은 손을 들어 상미에게 인사하고 급히 여의도역으로 향했다. 사실 그가 금요일마다 일찍 퇴근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신과 상담이 있어서다. 그가 정신과에 방문한 것은 오늘로 벌써 세 번째였다. 사유는 주식 우울증이었다.




***




영준은 H투자증권의 최연소 차장이었다. 명문대 경제학과와 수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여의도에서 이름깨나 날렸다. 인센티브로만 1년에 7억 원을 벌었으니 제법 잘나가는 증권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지와 인터뷰도 여러 번 했다. 여의도 실적 톱 파이브, H투자증권 에이스 등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았다.


영준의 고객은 대기업 임원, 상장기업 대표, 용인 땅 부자 등 큰손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받아 굴리는 돈이 무려 수백억 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밖에 몰랐던 영준의 눈높이와 씀씀이 역시 고급스러워졌다. 가족들과 가벼운 외식을 할 때조차 항상 고급 레스토랑에 갔고 금쪽같은 외동딸에게 온갖 사교육을 시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부자들만의 세상에 들어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하나 없었다.


장애물 하나 없이 쭉 뻗은 도로를 쌩쌩 달리던 영준의 엔진이 점점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언젠가부터 그는 이유 없이 초조해졌다. 가만히 있는데 식은땀이 날 때도 있었다. 영준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직장인들이 가득한 만원 지하철에서 간신히 손잡이를 붙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고급 외제 차를 타고 퇴근했겠지만 상담 시간에 맞춰 구로동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는 게 안전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초조해졌을까? 영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다단계 보이스피싱으로 1억 원을 날렸을 때? 혜진이가 키즈 모델 오디션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아내가 나 몰래 선물옵션으로 장인어른에게 받은 유산을 전부 날렸다는 것을 알게 된 날부터? 영준은 손이 하얘질 정도로 손잡이를 꽉 잡았다.


사실 증권맨으로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유능한 선배들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잠수를 탔다. 영준은 대리 시절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들었던 도시 괴담을 떠올렸다.


“어이, 이 대리. 여의도 증권맨 톱 파이브가 왜 매년 바뀌는지 알아?”


“글쎄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서겠지요?”


 


“아니야, 그중에 두 명은 매년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든.”




영준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김 선배 역시 몇 년 뒤 빚더미에 앉았다. 김 선배가 매매가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크로리버파크로 이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준의 선배들은 최고가 되려고, 지기 싫어서, 지금 내가 누리던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무리하고 선을 넘고 위험한 투자를 했다. 그렇게 스러져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영준은 절대 일에만 매달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선배들이 욕심이 아니라 불안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영준 역시 조금씩 무너졌다.




***




“혹시 어린 시절이나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심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으셨나요?”


영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준수가 물었다. 영준은 주식 클리닉에서 왜 이런 것을 물어보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의문과 별개로 머릿속에 자꾸 스멀스멀 옛생각이 피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1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준이 속으로 생각했다.


‘미안해, 엄마. 나도 나름 노력했지만 결국 엄마가 바라던 의사나 변호사는 못 되었어.’


영준은 어머니의 바람을 이뤄주지 못했지만 돈은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부터?’


영준은 학교에 다녀왔더니 집 구석구석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던 어느 날을 떠올렸다. 텔레비전에도 냉장고에도 딱지가 붙어 있었다. 딱지에는 ‘압류’라고 써 있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무척 나쁜 일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소리 내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저는 항상 불안했었던 거 같아요, 선생님.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어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부담 때문에….”


영준이 회상을 멈추고 준수에게 답했다. 준수가 되물었다.


“왜 어린 영준 씨가 그런 과도한 부담을 모두 짊어져야만 했을까요?”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지냈죠. 그런데 3년 전에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자기 처자식 버리고 25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없던 사람이….”


“많이 원망스러우셨겠군요.”


어린 영준은 항상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수능을 보았다. 결국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겨우 취업을 했더니 승진 경쟁이 펼쳐졌다. 실적과 숫자에 운명이 좌우되었다.


영준은 마흔넷이 되어서야 자신의 무의식에 항상 불안이 있음을 깨달았다. 실수하면 안 된다, 회사에서 적을 만들면 안 된다, 인사고과에 마이너스가 될 짓을 하면 안 된다 같은 강박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렇게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영준 씨가 어떤 사람인지, 언제 웃고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떠올려보세요. 무엇을 싫어하고 어떨 때 상처받는지 같은 것들이요.”



영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졌다. 지금껏 영준은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하지만 막상 눈물을 흘려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고급 외제 차, 강남 아파트, 다른 사람의 인정과 명예 같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애쓰면서.


투자를 할 때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의 불안과 타인의 불안에 공감하고 이에 대처하는 일이 곧 투자다. 그래서 준수는 환자에게 주식투자를 할 때 종목이나 시장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식 우울증을 고치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준수는 의사로서 잘못된 투자 습관, 행동을 교정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환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


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 트라우마와 열등감, 어린 시절에 겪은 학대와 상처가 현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파악해야 했다.


주식과는 별개로 원래부터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증 등을 앓아온 환자의 경우도 있었다. 기질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충동적이거나 ADHD 증상을 가진 환자도 있었다. 이처럼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내과적, 외과적 문제들이 정서적 상태와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가령 준수의 환자 중에는 불면증 때문에 매일을 힘들게 시작하는 사람


이 있었다. 그는 주식을 매매할 때도 늘 피곤한 상태였다. 이렇게 전반적인 심리상태와 건강에 관한 통합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환자의 우울과 불안의 근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준수는 영준을 보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슬픔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작업이라는 것임을.




***





“상처받은 개미들이여, 구주 클럽으로 오라!”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구로동 주식 클럽>


박종석 지음



12월 14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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