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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Jan 25. 2024

아침 드셨어요?

그거 아세요? 오늘 뜬 보름달은 내일 아침에도 볼 수 있답니다. 그런 의미로 이 편지를 꼭 아침에 읽어주셨으면 해요. 제가 보름달을 빌미로 아침에 어울리는 인사를 할 생각이거든요. 아침 식사는 잘 챙겨 드셨나요?


저는 요새 고구마를 한두 개 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일어나자마자 에어프라이어에 이십 분 정도 구우면 고구마가 아주 부드럽게 잘 익어요. 누군가 고구마를 굽지 말고 쪄 먹으라고 일러줬던 것 같은데 마땅한 찜기도 없고 귀찮은 탓에 손이 바로 에어프라이어로 향합니다. 고구마가 익는 동안 저는 아침마다 글을 몇 편 읽어요. 메일함으로 날아온 구독레터를 읽거나 시를 읽기도 합니다. 편지를 쓰는 지금은 제 오른편에 황인찬 시인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고구마가 다 익었다는 에어프라이어의 친절한 알림이 들려옵니다. 띵! 하고 경쾌하게 말이지요. 하지만, 고구마가 잘 익었는지 살펴보는 일을 잠시 미뤄둡니다. 아직 읽을거리가 남아있고, 때마침 든 감상을 놓칠세라 어디에라도 적어야 할 짬이 필요하거든요. 무엇보다 지금 당장 고구마를 꺼낸다 한들 먹을 수가 없어요. 고구마가 너무 뜨거우니까요.


잠시 동안 고구마를 식힐 여유를 보냅니다. 저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좋아요.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고구마를 의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구마는 고구마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만 온전히 고구마가 식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읽고 싶은 만큼 다 읽고 쓰고 싶은 만큼 다 쓴 다음, 내친김에 오늘 할 일까지 야무지게 정리하고 나서야 그때 고구마가 머릿속에 들어오는 법이거든요. 아! 내 고구마! 이렇게 입 밖으로 그 존재를 찾으며 성큼성큼 고구마를 향해 걷습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에어프라이어의 손잡이를 잡고서 당겨 열면, 모락모락 고구마 향이 주방 가득 퍼져요. 맨손으로 쥐어도 전혀 뜨겁지 않고 아주 알맞은 고구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끈한 고구마를 두 손 가득 움켜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손 끝에서부터 온몸에 퍼지도록 온기를 내뿜고 있는 이 고구마가 보름달 같았거든요. 머릿속에 아무리 보름달이 그득히 들어차도 그렇지, 어떻게 이 순간에 보름달을 떠올릴 수 있는 거지? 스스로 돌이켜봐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이 생각을 묻어버릴까 하다가 기어코 저는 이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편지로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달은 태양과 같이 스스로 열을 뿜어내는 존재가 아니기에 갓 구운 고구마로 비유할 수 없어요. 달의 따듯함은 그 자신에게 있기보다 다른 존재에게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알맞게 식은 고구마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그리고 그것을 곧 잃어도 상관없다는 듯 또 다른 존재에게 온기를 전하는 것 또한 이 둘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어요. 마치 제가 보름달을 보며 포근함을 느끼고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낸 고구마를 쥐며 든든함을 느끼는 것이 연결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접시에 받쳐서 고구마 껍질을 정성스레 까봅니다. 고구마의 수분이 충분했는지 벗겨낸 노란 과육에서 김이 한가득 피어나네요.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벌써 포만감이 드는 것 같아요. 그만큼 달고 맛있어요. 아참, 저는 밤고구마를 더 좋아해요. 어릴 적엔 분명 호박고구마를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새 먹어보면 왜 좋아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밤고구마를 훨씬 좋아합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 아직 아침 식사 전이라면 꼭 챙겨 드셨으면 해요. 이왕이면 따듯한 음식이면 좋겠어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지 않게 적당한 온기로 식사를 하셨으면 해요.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쥐거나 한동안 입 안에 머금거나 혹은 그것에서 나는 향이 있다면 충분히 맡아주셨으면 해요. 그 찰나의 여유를 꼭 누리셨으면 하는 제 바람을 이 편지에 담아봅니다. 해가 완전히 나기 전까지는 보름달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보름달과 함께 하는 아침이라니. 햇빛만으로도 충분한 아침에 보름달까지 가세하다니. 정말 배부른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천이십사 년 첫 번째 보름달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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