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1. 레온 → 산 마르띤 델 까미노
엄마가 늦잠을 자는 날이 오다니! 약속한 시간보다 늦어진 엄마의 기상 시간 덕분에 우리의 걸음도 느지막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해는 뜨기 전이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가는 길은 서쪽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기에 일출의 시간이 하루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아침달과 함께 걸을 수 있었고 레온에 떠오르는 태양에 등을 데우며 걸을 수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아침 식사를 하러 들린 바에서 던을 만났다. 프로미스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던 던을 우리는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엄마와 내가 2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사흘로 나눠 걷는 동안 던이 우리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레온 이후의 일정을 고민하던 던은 내게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지 계획을 물었다. 레온에서 아스또르가까지 걷는 구간은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확연하게 거리 차이가 있는 갈림길에서 엄마와 함께 걷는 나는 당연히 짧은 길을 선택했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까지 걷고, 그다음 날 아스또르가까지 가려고 해요. 지난번에 까미노에 왔을 때도 그렇게 걸었어요."
"좋은 생각이구나. 혹시 내가 같이 그 길을 걸어도 되겠니?"
"그럼요! 머물게 될 알베르게를 정하면 연락드릴게요."
지난밤, 레온에서 잠에 들기 전 나는 우리와 다른 알베르게에서 1박을 보내고 있는 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와 내가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서 묵을 알베르게의 주소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를 다시 만날 거라 기대감으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이렇게 만나다니. 엄마도 던을 무척 반가워했다.
"영아, 먹을 것도 좀 주문해서 와. 바나나 먹을까?"
오렌지 주스를 한 잔씩 마시자던 엄마가 던이 크로와상을 들고 나오는 걸 보고서 말을 바꿨다. 엄마는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하는 던과 템포를 맞추고 싶어 했다. 오렌지 주스에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하는 우리에게 던은 평소에도 이렇게 식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까미노에선 보통 이렇게 먹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일 년 동안 먹을 오렌지 주스를 까미노에서 마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말에 던 역시 자신도 일 년 동안 먹을 크로와상을 까미노에서 먹는 것 같다고 했다.
"이따 밤에 다시 보자꾸나."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정리하던 던은 내게 'See you tonight'으로 인사를 했다. 상대적으로 그보다 걸음이 빠른 우리와 함께 속도를 맞춰 걷기보다 목적지인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서 다시 만나겠다는 뜻이었다.
"네, 좋아요! 이따가 뵈어요."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길을 나섰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산 마르띤 델 까미노는 추위 그 자체였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알베르게는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한겨울에 난방 시설 하나 없는 곳이라니.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익숙해진 겨울 까미노의 사정은 그런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마음은 샤워를 하며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 추위에 찬물 샤워가 말이 돼? 하, 정말 이게 최선인가.
나는 그날의 기억을 수정할 기회를 스스로 마련하기로 했다. 한여름에 접어드는 시점이었지만 난방 시설이 갖추지 않았던 그 알베르게는 우선 피하기로 했다. 세월이 한참을 흘렀으니 그 사이 시설이 개선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가능성도 일단 제쳐 두었다. 평점이 높은 알베르게 중 엄마와 상의해 저렴한 쪽을 골랐고 선택은 꽤 만족스러웠다.
편안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알베르게였다. 운도 작용해 레온 이후로 또 한 번 길 위의 순례자가 급격히 늘었음에도 알베르게는 한산했다. 비록 보다 긴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초록의 경치가 더욱 우거진 길을 선택한 이들이 꽤 있었을 터였다. 또한 산 마르띤 델 까미노는 작은 마을치고 알베르게의 수가 적지 않아 이 마을에 머무는 이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지저귀는 새의 소리를 듣기 좋은 알베르게의 앞마당으로 나갔다. 체크인을 하며 눈여겨본 해먹에 쏙 들어가 누워 일기를 썼다. 눈이 부시는 탓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쨍쨍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금세 몸이 달아올라 그 자리에 오래 있기란 어려웠다. 그늘로 피신해 마저 일기를 쓰다가 서늘한 기운에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면 나는 또다시 해먹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반복했다. 누군가는 내 행동에 비효율을 따질지 몰라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지중해의 여름날을 온전히 누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적은 수의 순례자가 머무는 알베르게답게 조촐하게 열린 커뮤니티 디너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 마르티나였다. 마르티나는 레온에서 순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순례자 통과하는 첫날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골반부터 발가락까지 아프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던과 엄마, 그리고 나는 여태 걸어오며 느낀 고통을 그에게도 들려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여전히 자신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늘을 펴내며 말을 이어갔다.
"까미노를 시작하며 읽은 책이 있었는데 거기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당신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어요. 까미노를 시작하고 마칠 때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아요."
마르티나의 이야기에는 까미노를 이제 막 시작하는 순례자의 설렘이 묻어났다. 그는 며칠 전 레온으로 오기 위해 자신의 배낭을 꾸리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 삶에는 그저 이 정도만 필요한 게 아닐까요?"
"우리가 메고 다니는 배낭처럼요?"
"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12년 전에 이곳을 걸으며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고 짐을 계속 덜어냈죠. 필요 없는 것을 버리다 보니 결국 아주 적은 짐으로도 한 달을 거뜬히 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그에게 답을 하며 생각했다. 12년 전, 나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길을 그리워했다.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던 자유를 어떻게 하면 삶에 녹여낼 수 있는지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는 길에서 누린 감각을 쉬이 잊게 했다. 나는 취업 전선에 기꺼이 뛰어들었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에 만족하며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어렵지 않게 사면서 하고 싶은 건 언제든 해볼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삐딱선만 타지 않으면 안정적이게 흘러갈 수 있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려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면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심술이 났지만,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며 자꾸만 딴생각을 하는 나를 잠재워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길 위의 삶은 불쑥 고개를 들며 평탄하게 살던 나를 수시로 헤집어 놓았다.
십 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서야 유예하던 자유를 위해 나는 나를 가둬두었던 우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단순히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십 년의 시간 동안 길에서 찾았던 자유의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다듬어갔다. 어느새 자유는 제멋대로 사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을 두는 곳에 언제든 나를 가져다 두는 힘이란 것을 알았다. 즉, 마땅히 삶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자유란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람이든 장소이든 일이든 그건 상관하지 않았다.
자유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생각한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변화는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도록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다. 비록 예전만큼 월급을 벌어들이진 못하겠지만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할 때 사랑하는 일을 고를 수 있도록 폭을 넓혀두기 위해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이 가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되도록 굴려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외에 딴생각은 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 이젠 어디 가서 작당모의가 취미라는 말을 하던 것도 취소해야 할 지경이었으니까.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시를 찾아가서도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한 곳에 머물러야만 동작하는 삶의 형태로 인한 이별도 피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고 소유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리랜서가 된 후에도 좀처럼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 취향대로 꾸며놓고 사는 집이 좋았고,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취할 수 있는 도심이 좋았다. 불편한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마음만 길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일을 하는 방식만 바꿔놨을 뿐이지 여전히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원하는 것을 모조리 다 갖춰놓고 편리하게 지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마르티나와 나누는 대화에서 예전의 깨달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깨달은 거와 다르게 삶은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모르는 던은 내게 그 점을 스물세 살에 알게 된 건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처음 까미노를 걸었던 12년 전의 은영을 떠올리며 말한 것이었다. 나는 마냥 동의할 수 없는 마음에 불편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과연 어깨에 멘 배낭처럼 간추린 삶이 가능할까?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은영, 여기가 산 마르띤 델 까미노야."
"네?"
던은 생각에 빠진 나를 테이블로 옮겨놓으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리고 마르티나를 가리켰다. 아, 그렇지. 그의 이름이 마르니타였다. 마르티나를 처음 만난 곳이 산 마르띤 델 까미노라니. 나는 그를 두고 잊지 못할 우리의 첫 만남이라며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Day 21. JUN 30, 2024
León → San Martín del Camino, 24.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