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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23. 2024

엄마가 좋아한 레온

Day 20.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 레온

짧은 거리였던 만큼 정오가 되기도 전에 도착한 레온. 가볍게 도시 구경을 할 생각으로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 바티스트를 만났다. 그와 우리는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에서 처음 만났다.


"네 엄마가 하루에 그만큼 걸었다고? 32.5km를?"


저녁 식사 후 길을 오가며 서로 얼굴을 익힌 이들이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의 어느 바에서 맥주를 한 잔씩 들고서 모여들었다. 그늘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던 17km의 고행길에 대해 논할 때였다. 엄마와 내가 더 멀리서 온 탓에 32.5km를 걸었다는 말에 바티스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는 그렇다 쳐도 네 엄마가 어떻게 그걸 해냈냐며 믿을 수 없다고 재차 물었다. 그가 아무리 믿을 수 없다고 해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엄마는 그 마을에 있었으니까. 


바티스트는 레온에 우리보다 하루 전에 도착해 연박 중이라고 했다. 엄마와 내가 레온에 언제 도착했는지 물었다. 아마 11시 반 정도였지 않았나? 바티스트가 이번에는 완전히 납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랬겠지! 네 모녀가 잘 걷는 건 이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어? 네 어머니는 항상 웃고 계시고!"


그의 말에 엄마는 웃고 있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잘 걷는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화려한 레온의 거리가 마음에 든 엄마는 모자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피레네를 넘던 까미노의 첫날에 아끼던 모자를 잃어버렸다. 모자에 달린 끈으로 배낭에 메어두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느샌가 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서 그런 모자를 또 구할꼬."


하늘거리는 갈색의 모자였다. 양산도 어두운 색을 쓰는 엄마는 햇빛을 가리는 물건으로 밝은 색보다 색이 짙은 것을 선호했다. 밝은 색은 눈이 부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소재는 가벼운 것을 골랐기에 여름에도 답답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엄마의 취향에 딱 맞는 모자를 첫날에 잃어버리다니. 나도 덩달아 상심했던 순간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평소에도 모자를 잘 쓰지 않는 나는 선뜻 내 모자를 엄마에게 내어주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 아니어도 쨍쨍하게 해가 내리는 날에는 더없이 쓸만했으니까.


투명한 창 안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물건들은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마따나 그런 모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눈이 가는 대로 거리를 다녔다. 레온의 가장 평범한 행인처럼.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이곳에 앉아서 거리를 보며 생각했지. 아는 얼굴을 만나고 싶다고!"


엄마와 나는 어느 노천카페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온 순례자 레슬리 부부는 낭만적인 말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와 우리는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려고 들린 바에서 처음 만났다. 레슬리도 바티스트처럼 이틀째 레온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그 말에 엄마는 우리도 하루 일찍 와서 레온에서 이박 할걸! 하며 마음을 표현했다.


많은 순례자들이 대도시에서 이틀씩 쉬어가기도 한다. 나도 그동안 지나쳐온 대도시에서 종종 엄마에게 연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다 걸은 뒤에 쉬던지 하자며 바로 이어서 걷기 바랐다. 그랬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먼저 자처해서 연박을 이야기하다니.


축제가 열린 레온

"엄마 레온이 좋으면 오늘부터 이박을 하면 되지. 여기서 하루 더 머물다 갈까?"

"그럼 산띠아고에 하루 더 늦게 도착하는 거잖아."

"그런 셈이긴 한데 우리가 처음부터 도착하는 날을 정해놓고 걸은 건 아니라서. 그러니까 하루 더 이따가 가도 상관없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그냥 내일 바로 걸어 가자."


오랜만에 엄마가 마음에 든다고 한 도시를 발견한 것임에도 산띠아고를 재촉해서 가자는 엄마의 결정이 아쉬웠다. 그보다 엄마가 레온이 눈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다. 매번 걷기라는 순례자의 일과를 마치면 엄마는 알베르게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선뜻 마을이든 도시든 구경을 하러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여유로워졌다는 뜻이겠지. 최근 사흘동안 짧은 거리를 걸으며 체력을 돌본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날도 바로 이어서 걷기로 한 대신 우리는 하루를 꽉 채워서 레온을 즐기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하루 먼저 레온에 도착한 브라이언이 이곳에서 도시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공원 한가운데에서 기타를 멘 가수가 열창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무대를 중심으로 뻗은 길마다 푸드 트럭이며 작은 상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영아, 엄마 팔찌 하나 살까?"


엄마는 플리마켓에 진열되어 있던 원석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의 크기도 색상도 다양해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이것저것 손목에 채워보더니 엄마가 입고 있던 초록색 티셔츠랑 어울리는 팔찌를 하나 사기로 했다. 6유로 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것이었다. 모자 대신 산 팔찌는 엄마에게 레온을 추억할만한 물건이 되었다. 엄마가 순례자의 신분을 잊은 채 가장 즐겁게 시간을 보낸 곳으로.


엄마와 레온의 대성당을 찾았다. 지난번 부르고스에서 다투느라 보지 못한 대성당의 한을 레온에서 풀 수 있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가득한 성당을 우리는 고개를 젖힌 채로 걸어 다녔다.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을 쉼 없이 찍은 것은 물론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제일 많이 찍었다. 엄마의 모습을, 내 모습을, 그리고 대성당을 함께 간 프란체스카가 우리 둘의 모습을 담아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 이날을 떠올릴 때면 아마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보다 서로의 얼굴을 더 많이 들여다볼 테니까.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엄마가 궁금해하는 빵을 사고, 걷기의 보상처럼 챙겨 먹는 젤라또를 먹고, 저녁 식사에 맥주 한 잔까지 걸치고 들어왔는데도 나는 여전히 밖을 나가고 싶었다. 대도시까지 와서 밤을 즐기지 않는다는 건 어쩐지 좀 억울했다. 한국에서 그러는 것처럼 일찍 들어오라는 엄마의 단속에 건성으로 답을 하며 길을 나섰다. 내 나이가 몇 개인데 하며 입을 삐죽거리는 건 덤으로.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도 어둠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생기가 도는 도시에서 밤을 그리워하는 이는 나밖에 없는 듯했다. 낮에는 여럿이 어울리다가도 밤만 되면 혼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밤이 되어도 여전히 여럿이서 함께 하는 여행을 보내고 있었다. 태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기나긴 낮이 지속되는 백야라는 시간은 더욱이 혼자라는 정서를 그립게 했다. 분명 대도시의 밤을 누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실은 혼자 있는 밤을 바랐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맥이 빠졌다. 그래서 짙은 밤이라도 보아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눈앞은 뿌옇게 막이 생겼고 도시의 빛은 흐려졌다. 머리는 무거워지며 입은 자꾸만 벌어졌다.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며 하루를 시작한 탓에 몸이 재워달라며 극성을 부리는 터였다. 와인을 한 잔 하고 갈까, 했던 마음은 그새 닫히고 말았다. 밤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몸을 이기지 못하는 정신은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고 굴복해 버렸다.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까미노에 와서 이렇게까지 놀았던 날이 또 있었던가? 그것도 엄마랑 같이. 밤을 보지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충분한 날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엄마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고 알베르게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밤을 잊은 레온



Day 20. JUN 29, 2024

Mansilla de las Mulas → León, 18.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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