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7. 오 세브레이로 → 뜨리아까스뗄라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려는 순례자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자동 기상을 하고 말았다. 때마침 라 빠바에서 엄마를 비롯한 나의 까미노 가족이 이제 막 출발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느린 속도로 배낭을 꾸렸다.
"은영아!"
엄마가 도착할 즈음 마을 어귀로 마중을 나갔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 사이에서 나를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 옆에 프란체스카가 나란히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 다정한 엄마와 딸 사이처럼 보였다. 곧이어 던과 마르니타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 세브레이로의 어느 바에서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길을 나서려는데 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비를 꺼내 입으며 빗속의 하산길을 준비했다. 나는 동시에 아찔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12년 전 겨울, 오 세브레이로에서 뜨리아까스뗄라로 내려가던 날이었다. 나를 비롯해 같은 시간에 출발한 여덟 명의 순례자가 눈 속에서 단체 미아가 돼버렸다. 눈이 쌓여 노란 화살표가 모두 가려진 바람에 길을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밤에 눈이 몹시 왔던 터라 이레네는 위험하니 날이 밝으면 출발하라고 일러준 터였다. 그의 말대로 느지막이 걷기 시작했는데도 이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GPS도 말썽이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걷지 않아도 될 7km를 더 걸어야 했다. 구조요청을 해야 하나, 얼어붙는 손을 모아 마찰을 일으키며 녹이던 찰나 함께 걷고 있던 독일에서 온 순례자 요건이 소리쳤다. 그가 노란 화살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비록 두 번의 경험뿐이지만 어째 이 길은 내게 항상 시련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우리는 미끄러운 길을 조심히 살피며 걸어야 했다. 내 뒤를 따라오던 두 어머니가 잘 걷고 있는지 궁금해 뒤를 돌아봤다. 그때 눈이 마주친 던이 내게 말을 건넸다.
"은영, 어제 어땠니? 어제가 까미노에서 엄마랑 떨어져 지낸 게 처음이었지?"
나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오 세브레이로에서 봤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이레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묻지 않은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며 말을 덧붙였다.
"엄마가 무척 독립적인 성격이시거든요. 단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제게 의지해야 하는 이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으셨을 거예요. 엄마도 저도 모두에게 좋은 날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프란체스카도 내게 비슷한 질문을 건넸다. 그러더니 내가 던에게 한 말을 반복하기도 전에 프란체스카는 먼저 이렇게 말을 했다.
"네게도, 네 엄마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을 거 같아. 그렇지 않니?"
그제야 이들이 단지 내가 오 세브레이로를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서 그곳을 혼자서라도 갈 수 있게 해 준 것이 아니라 엄마와 내가 서로 잠시 떨어져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비를 맞으며 걷는 데도 엄마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비쳐 보였다.
"이제야 다리가 정말 내 거 같은 거 있지! 그전에는 내 다리 같지가 않았다니까."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두 다리가 이제야 자기 다리 같다는 엄마의 말에 웃음이 났다. 성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이제 일주일 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엄마가 앞으로 이렇게만 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종일 내리던 비는 이날의 목적지인 뜨리아까스뗄라가 손에 잡힐 듯한 때가 돼서야 잦아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구름이 걸리지 않는 고도 아래로 내려와서야 비를 피할 수 있었다고 봐야겠다.
마침내 알베르게에 닿았다. 눈 속에서 겨우 탈출해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던 12년 전에도 묵었던 곳이었다. 함께 도착한 프란체스카가 나 대신 스페인어로 내가 이곳에 예전에도 묵었다는 사실을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주인은 그때도 자신이 여길 운영하고 있었다면서 나를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그때처럼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몸이 노곤해지는 온도였다. 비눗물이 다 지워졌는데도 나는 샤워기 앞을 떠나고 싶지 않았고 수분의 시간 동안 몸을 더 데우며 쓸데없이 물 낭비를 했다.
함께 하산을 마친 이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까미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엄마와 둘이서 걷던 이 길을 이제 던, 프란체스카, 마르티나, 그리고 엄마와 나는 어느새 가족이라 서로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엄마라는 집과 함께 걷던 나는 더 큰 집을 얻게 된 셈이었다.
지난 까미노에서 잭, 라이자, 나초, 베드로, 그리고 훌리아와 나는 서로를 가리켜 까미노 가족이라고 불렀다. 그때도 나는 집과 함께 걷고 있었다. 집을 떠나와 쓸쓸한 마음으로 걷던 내게 잭은 기대어 쉴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나초는 나와 항상 놀아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자처했다. 라이자는 세상을 감각하는데 중요한 배움의 태도를 길러주는 어머니의 역할로, 베드로와 훌리아는 마음을 진심으로 나누는 것이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형제자매의 역할로 나와 걸음을 맞췄다.
나는 그들을 무척 사랑했다. 편애에 가까운 그들을 향한 애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까미노에서 그들과 같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곁에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이들이 걸음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했다.
마음 하나 뉘일 곳이 없어 길을 나선 첫 번째 까미노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지금은 그 여정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마음을 둘 집이 어디에든 있다는 확장된 경험으로 말이다. 그 시절 나를 일으켜 세워준 가족과 지금 나와 호흡하는 가족, 모두 내게 한없이 넓은 집이 되어주며 곁을 내주었다.
Day 27. JUL 6, 2024
O Cebreiro → Triacastela, 20.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