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대기업 퇴사후 박사과정을 시작하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요것사)"이라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분 있나요?
요즘은 그 영상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극도로 비효율적인 것을 싫어하는 나는, 이동시간에 짤막하게라도 자기계발 할 수 있는 영상들을 반중독적으로 보곤 했었다.
신사임당, 스터디언, EO, 조코딩 등 각 채널마다 초대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다르다. 특히 요것사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무언가 흔하지 않은 자기 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는 식물이 주는 위안을 좋아하다가 아예 식물원(?)을 하게된 어떤 분의 영상을 우연하게 클릭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일기를 7년째 쓰고 있다고 했는데, 평소에 아이를 키우면서 기록 없이 흘려보내는 추억들을 아쉬워 하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일기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그녀가 일기쓰기를 하게된 계기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보고 매일 아침 일기쓰기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는데, 그녀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기에 여태껏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그 책을 당장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을 했고, 읽었고, 현재도 읽으며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책에서 안내하는 바처럼 매일 아침 3페이지씩 쓰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서너번, 한 페이지 이상을 쓰고 있고, 아침에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지렁이 같은 글씨로 쓰는 중이다. 벌써 네 달 이상, 공책으로는 (가볍고 얇은 공책이지만) 5권째 일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출근하는 장소가 달라졌다.
어쩌면 이전 글의 100억을 번다는 목표에서 잠시 멀어지는 선택일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회사가 아닌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정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시킨 한 숙제가 그 계기가 됐는데,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제약조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 직업 등은 열가지 작성해 보는 것이었다. 요가원 원장(다리도 안찢어지지만..), 드러머(드럼 쳐본적도 없지만..), 공동체 운영자(속한 공동체도 없지만..) 등이 그 목록에 있었고, 내가 제일 처음 썼던 직업은 과학자 특히 생명과학자였다.
그 다음 숙제는 각 직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한 가지를 해보는 것이었다. 열 가지 직업 중 우선 두 가지 직업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적었다. 첫째는 드럼 레슨 받기. 아주 쉬웠다. 제일 집에서 가까운 드럼 연습실에 전화를 걸었고 레슨을 등록했다. 둘째는 좀 더 난이도가 있었는데, 행동 자체의 난이도 보다는 내가 가진 커리어를 무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를 연구하는 교수를 찾아 연구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거의 십 수년 전에 썼었던 자기소개서에 회사 이력을 더해 첨부하여...
희재가 유전병을 앓고 나서 한동안 이러한 치료제가 언제 개발될 수 있을까 검색하고 찾아보다가 넷플릭스의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총 두 편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이 기술에 대한 혁신성과 탄생하게된 배경, 그 기본 원리 등의 소개 다큐였다면, 다른 한 편은 이 기술 덕택에 유전자 편집이 너무나도 쉬워져서 일반인들도 키트를 구입해 자기 몸이나 동식물을 대상으로 (불법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바이오해커"라고 불린다, 누구는 아픈 가족을 치료하기 위해, 누구는 돈을 벌기위해 각자의 사정으로 이러한 바이오해커들이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희재의 유전자치료제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시각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기술이어서 관련 책까지 찾아 읽으며 흥미로워 하다가 잠시 잊고 지냈었는데, 이 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는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 답장이 왔다. 화상으로 미팅을 해보자고 말이다. 이게 무슨 꿈같은 얘기냐. 나는 당장 찾아뵙는다고 답장을 보냈다. 언터뷰는 단지 인터뷰이니 최대한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그 이후 그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 몇 번이고 인터뷰 취소 메일이 오지는 않았는지 메일함을 다시 확인하곤 했다.
대망의 인터뷰 날. 교수 사무실을 찾아갔고, 교수님께선 자기소개부터 해보라고 했다. 아이의 유전병이 트리거가 됐지만, 학창시절 때부터 생물을 좋아했었다는 얘기 같은 지원 이유부터, 회사를 그만두면 가족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하다보니 3-40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교수님께서는 한 번 더 기회를 줄테니 한 두 달 고민을 더 해보고 진짜로 할거면 그 때 메일을 달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말해서 승낙을 받은 것이다! 물론 대학원입시가 남아있고, 그것을 내가 통과할 수 있는지는 나의 역량이긴 하지만 말이다. 교수 사무실을 나오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나에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지 볼을 다시 꼬집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확정은 아니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 번듯한 직장에 좋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졸업해서도 좋은 직장을 간다는 보장이 없는 그 길을 가려고 하니 가장으로서 나에게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래도 일단 승낙을 받았고, 나에게 고민해볼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이제 아내와 현실적인 문제를 실제로 고민해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