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이 엄마가 되는 일
살자. 끝까지 살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4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엄마의 짐을 정리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정리해볼까 했지만 할 수 없던 그날에, 엄마가 옷장 위에 올려둔 달력을 뒤적이다 저런 메모를 발견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다.
2017년 2월의 마지막 날,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다 저런 메모를 남겼을까.
저 때는 이미 엄마에게 사용될 수 있는 치료책이 없음을 주치의에게 통보받은 이후였다.
줄다리기 끈을 붙잡고 6년의 시간을 힘겹게 버텨왔는데 결국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이제 어떠한 의학적 도움도 줄 수 없으니 혼자 버텨야 한다는 통보를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무리 버텨보려 뒤로 누워봐도 자꾸 앞으로 끌려가게 되는 무력한 상황에 엄마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덤덤하게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이제 더 이상의 항암 치료는 싫으니
남은 삶을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전화기 너머로 전하던 엄마는
2월의 마지막 날 어떤 생각을 하다 삶에 대한 의지를 다졌을까.
저런 메모를 남기고 9개월도 채 못 채우고 끝까지 살아내지 못할 것도 어느 정도는 점쳐봤었을까.
우리 가족에게 있어 엄마의 병은 전혀 우려해본 적 없던 어떤 것이었다.
'암'이란 건 모두에게 으레 그런 것이겠지만.
엄마의 병명을 전해 들었던 최초의 날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왜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였다.
엄마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테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겪는 심리적 사이클이 있다.
암환자의 가족들은 암환자가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굴레에서 언제든지 굴곡을 겪어낼 수 있음을 주지받는다.
그 사이클 안에서 암환자가 겪을 수 있는 우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전해 듣는다.
우리 엄만 이 사이클을 몇 백번이나 견뎌냈을까.
2017년 2월의 마지막 날, 엄마의 마음은 '타협'에 있었을까, '수용'에 있었을까.
나 역시 암환자의 딸로서 비슷한 심리를 겪어냈다.
- 우리 엄마가 암 일리 없어.
- 왜 아무 죄도 안 짓고 산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세상이 미친 거 아냐??
- 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려면 난 엄마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 우리 엄마가 결국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 같아...
- 이기려 하지 말고 암을 엄마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모든 사이클을 거쳐, '왜 아무 잘못 없는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에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는 덤덤함에 그나마 가까워지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엄마가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고된 시집살이도,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없는 살림에 꾸역꾸역 아이를 키워내야 했던 상황도, 내리 연달아 부모상 시부모상을 치러내야 했던 지루한 간병생활도 잘 버텨낸 엄마에게, 정 많고 웃음 많고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던 엄마에게 '암'이 찾아온 것이었다. 이제 정말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던 딱 그때에.
너무 좋은 사람이기에 엄마에게 일어난 불행에 이유를 붙일 수가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 들수록 나는 괴로워만 졌으니깐. 가끔은 이유를 붙이지 않고 이해해야만 하는 일들도 있는 것이었다.
엄마 없이 엄마가 되는 일 역시 나에겐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나에게 찾아온 불행. 나름 좋은 삶을 살아왔다 생각한 나에게, 이유 없이 찾아온 불행.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하염없이 두렵다.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해야만 이런 큰 불행이 찾아오는 건지 가늠할 수 없어, 내가 정말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인가 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난 불행을, '때때로 좋은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불행' 쯤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마음 상태 역시 '수용'이라고 하면 나는 이제 '수용'의 단계에 다 달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의 불행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불행을 받아들이고 주저앉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불행에 치여서 쓰러지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받아들임'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 나름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어 엄마 없이 엄마가 되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순간에도, 가끔은 철없이 엄마의 역할을 놔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엄마라는 역할이 주는 벅찬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늘 엄마의 부재를 맞닦뜨리고 청승을 떨게 된다.
엄마 없이 엄마가 되어가는 날들에, 나는 매일 아이를 향해 '엄마'라는 단어를 수백 번도 내뱉지만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내뱉는 '엄마'라는 단어에서 '우리 엄마'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아이가 잠든 밤이 되면, 나는 하루 종일 내뱉은 '엄마'라는 단어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으로 그 단어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딘가에 묻혀 있던 우리 엄마가 고개를 스윽 들고 나에게 중압감 있게 다가온다.
밤과 새벽녘, '엄마'라는 단어는 혀 끝에 맴돌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슬픈 단어가 된다.
그 밤과 새벽을 견디고 나면 아침은 또 온다.
그럼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웃는 얼굴로 아이를 맞이한다. 작은 아이를 대할 때 하등 필요 없는 우울과 서글픔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딘가로 밀어 두고 세상에서 제일 밝은 사람이 된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어스름한 때에, 서글픔에서 밝음으로 넘어가는 반복을 몇백 번을 해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줄여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엄마 없이 엄마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나의 불행을 '때때로 좋은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불행'으로 여겨보려 노력한다.
'나에게 일어난 불행을 '때때로'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일.
그것이 내가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 생각돼서 나는 고군분투한다.
서글픔에 치여 청승 떠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엄마라는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엄마 없이 엄마가 된 지 겨우 500일이 지난 지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순간에 엄마의 부재가 힘겨워질지 가늠 조차 할 수 없다.
엄마의 역할도, 아내의 역할도, 가끔은 딸의 역할도 버거워질 어느 날에 전화 한 통 할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서글프게 할까.
그럼에도, 나에게 일어난 불행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일어서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나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뿐인 내 인생에 예우를 갖추는 일.
딸이 대충 살아 버리지 않고 윤이 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하늘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도무지 대충 살 수가 없다.
엄마가 "끝까지 살자"라고 꾹꾹 써 내려간 글자들을 떠올리면, 나에게 닥친 불행에 진 채로 대충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좋은 사람에게도 때때로 일어나는 불행이 나에게도 찾아왔다고.
그런데 그 불행이 마치 엄마 때문인 것처럼 엄마가 느끼지 않게 하려면 그 불행에 지지 않고 나는 밝은 일상을 살아내야겠다고. 흘리는 눈물도 조금씩 줄여보고, 환자복 입은 엄마가 아닌 조금 더 건강하던 시절의 엄마를 더 많이 떠올려보자고 생각한다. 엄마는 떠났어도 여전히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정성스러운 삶을 살아보자고 생각한다.
이런 딸의 고군분투를 아무도 몰라도 단 두 사람은 알아주길 바란다.
하늘에 있는 엄마와, 나 자신.
언젠간 만날 날이 있을 테니 서로 꼭 안고 '잘 해냈다' 말해줄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에게 닥친 불행을 잘 이겨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