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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Feb 20. 2024

당신의 이불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그새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그 위에 사랑도 덮어준다. 오늘도 아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하고 아이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방을 나서는데, 갑자기 얼마 전 뵙고 온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미국 시댁에 도착한 것은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어머님께서 당신 방으로 부르시더니 이불을 만지작거리시며 말씀하셨다.

 "얘, 이거 내가 시집올 때 해 온 건데, 당시 가장 좋은 솜을 틀어 만든 거라 지금도 아주 따뜻하단다. 이거 하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추운 걸 몰라요. 네 방에도 이불을 준비해 놓긴 했는데, 아무래도 추울 것 같구나. 이거 가져가서 덮어라. 이 방은 외풍이 없어서 괜찮거든."

 어머님께서는 내가 추위 많이 탄다는 것이 생각나셔서 솜이불을 주고 싶으셨으나, 우리가 미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뇌출혈이 발생하여 입원하셨다가 막 퇴원하신 상태라 미처 이불을 옮기지 못하셨나 보다.

 "어머님 정말 감사한데요, 저는 지금 침대에 놓인 이불로도 충분해요. 제가 무거운 이불 덮으면 답답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요. 어머님께서야 말로 몸 따뜻하게 하셔야 하니 이 이불 저 주시지 마시고 꼭 덮으세요."

 

 남편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전기장판 들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변압기 있죠?"

 그가 가장 큰 캐리어 지퍼를 열더니 전기장판을 꺼냈다. 나와 어머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얘가 말은 살갑게 하지 못해도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이렇단다. 애가 정이 많아요, 정이."


 아버님께서 가져다주신 변압기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이민 당시 들고 오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낡고 거대한 변압기였다. 전기장판 코드를 꽂자 가장 낮은 온도로 맞추어도 잉잉대는 소리가 울리는 탓에 시끄럽기도 하고 불날 까봐 걱정스럽기도 하여 선잠을 잤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변압기 있다고 하시길래 사 오려다가 말았는데 다음에는 변압기 사들고 와야겠네.'

남편 역시 변압기가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잘 못 잤는지 중얼거렸고,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어머님께서는 110 볼트를 사용하는 미니 전기장판을 꺼내주셨는데 허리와 엉덩이만 간신히 데울 수 있는 크기인 데다가 최대 작동 시간이 두 시간인 관계로 며느리가 밤새 추위에 떨까 봐 거실용 담요도 끌고 올라오셨다.


 "얘, 내가 거실에 누워있을 때 쓰는 담요인데 이게 가볍고 포근하면서도 얼마나 따뜻한지 몰라. 이거 덮고 그 위에 이불 덮으면 한기가 들어오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어머님. 무거운데 제 옮기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잘 덮겠습니다. "


 그날 밤, 어머님 성의를 보아 말씀대로 담요를 이불과 겹쳐서 덮었다가 답답하여 한참을 담요와 씨름했다. 결국 담요를 슬금슬금 발 쪽으로 밀어내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 저녁부터는 담요를 깔고 잤다.


 며칠 뒤, 어머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은근슬쩍 말씀을 꺼내셨다.

 "얘, 내가 준 담요 깔지 말고 꼭 덮어라. 그래야 춥지 않고 따뜻해요."


 그냥 넘겨짚으셨나? 아니면 아침에 문 열려있을 때 흘깃 보셨나? 혹시 내가 잘 때 확인해 보신 건 아냐?  예전 같으면 온갖 상상을 하며 욱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이 철이 들었는지 군말 없이 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새벽마다 깔고 자거나 밀어냈던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고행을 했다.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아이 이부자리를 챙겨주고 나오며 생각했다. 잠자리를 챙겨주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특권적 사랑인데, 나는 여전히 그 사랑을 시모를 통해 받고 있구나. 어른들이 계시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이러한 사랑을 받을 길이 없구나. 칠순 넘은 어머님의 사랑이 세상살이로 쩍쩍 갈라진 마음 밭을 적셨다.




 미국을 떠나오는 날 아침, 부산 떨며 이불호창이며 베갯잇을 모조리 벗겨 세탁하고 건조해 다시 끼웠다. 이 일을 내가 해놓지 않으면 몸도 성치 않으신 어머님 몫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삐 오가는 나를 바라보는 어머님 안색이 좋아 보이시지 않았다. 떠나는 날까지 며느리가 고생하는 게 싫기도 하셨을 것이고, 세탁 방법도, 정리 방법도 어머님 방식과는 달라서 일하는 게 맘에 차지 않으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도 아셨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이것이 며느리의 사랑 표현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밤이 깊었다. 모든 잠자리가 사랑으로 포근하게 덮이길.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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