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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10. 2023

살아 남아 있을까


화장실 창문 밖으로 가까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정녕 살아남아을 수 있을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계절이 바뀌면 죽을 것 같던 나무에 신비롭게 새순이 돋고, 잎사귀가 무성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무의 생명력에 놀랍다. 거친 날씨와 거친 세월의 흔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나는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삶을 살기 바라지만 나무처럼 살기란 여간 어려웅 일이 아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한 여름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 그늘을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그 그늘 아래에서 잠시라도 더위를 식힌다. 자신의 것을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어주는 나무의 포옹력을 어느 누가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20년도 훨씬 전 7월 25일부터 8월 15일 동안 국토종단하면서 중간중간 나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중도에 탈락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1시간 걷고 10분 쉬는 그 시간에 사람들은 나무를 찾았다. 찾는 나무 아래서 최대한 나무 기둥에 발을 들어 올려 혈액순환이 되도록 몸을 누웠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나무는 우리에게 달콤함을 선사했다. 거기에 피로도 풀어주고 땀도 식혀 주었다. 꿀맛 같았던 그때 그 감정이 여전히 나의 몸에 살아있다. 지금까지 그토록 더운 날을 걸었던 적이 없어 다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지만, 한낮 더위에 길을 걷다가 이내 그늘을 찾기 위해 나무를 찾는다. 그렇게 나무는 내가 필요할때면 언제든 두 팔 벌러 환영해 준다. 편견과 차별이 없이 모든 이를 품어주는 대상을 떠올려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나무는 인간만 품는 것이 아니라 조류, 동물 온갖 이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을 품어준다.


화장실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새 둥지가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내 눈에 들어왔을 때의 새 둥지는 작았으나 어느 순간 새 둥지의 크기가 나무 기둥을 벗어나 커지고 있었다. 어떤 새가 지어놓은 둥지에 새로운 새가 둥지를 틀었다고 상상했다. 점점 커지고 견고해지는 새 둥지를 화장실 갈 때마다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뭇잎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새 둥지를 찾기 위해 화장실 창문 가까이 다가가 나무를 살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무에 변화가 일어났다.


무성해진 나무의 끝을 싹둑 잘라놓은 것이다. 새둥지에 그늘이 없어졌다. 새 둥지 가깝게 나무를 바짝 잘랐더니 새 둥지가 숨을 곳이 없어져 버렸다. 나무가 무성해 나무를 다듬기 위해 했다고 하더라도 새 둥지까지 노출할 정도로 바짝 나무를 잘라 새둥지가 노출 돼 새가 숨을 곳이 없어지게 한 것 같아 서운했다.


새가 숨을 수 있을 정도로만이라도 나뭇가지를 잘라주었으면 그렇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안쓰러운 마음에 계속 새 둥지를 바라보게 된다. 과연 지금 그 새둥지에 새가 살고 있을까. 아직까지 새가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기존에 살아있던 새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로운 새 둥지를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무가 무성해서 자르는 것은 좋지만 지구에 인간만이 사는 것이 아닌 이상 동물이나 조류로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터전 즉 영역 침범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부쩍 든다.


올해 다른 해보다 폭염, 폭우가 빈번하게 우리 일상에 찾아오고 있다. 이젠 우리는 가벼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이 기후위기를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정부가 아니 국가가 이를 실천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한 개인의 실천만으로 지금 지구가 겪고 있는 기휘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 벌거숭이가 된 나뭇가지의 새 둥지를 바라보면서 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공존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는 더 가깝게 우리의 삶 속으로 폭풍처럼 밀려들어올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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