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엄마의 콤플렉스였다. 여타의 다른 장애를 가진 부모들처럼, 우리 엄마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리 아이가 장애로 인해서 받을 피해와 불이익에 집착했다. 동시에, 본인이 장애 아동을 키우고 케어한 것에 대한 동정과 보상을 받기를 늘 바랐다.
어느 어렸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조금 키가 큰 친구와 어울렸던 적이 있다. 그날도 그 친구 집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나에게 무서운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너 그 ㅇㅇ이 집에서 놀았니? 너 그러면 큰일나! 너처럼 키가 작은 애가 키 큰 애랑 어울리면 안돼지! 그 ㅇㅇ이 엄마가 널 싫어할거야!!”
순간 당황스러웠고 이해되지 않았다. 왜? 왜 친구네 엄마가 날 싫어하지? 키가 작아서 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해되지 않은 채로 그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에는 2002 월드컵이 있었다. 나는 학교 반 친구들과 마트 앞에 대형 스크린에서 만나 같이 응원을 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저녁에 친구들이랑 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엄마는 말했다. “너 거기 나가봤자 너 혼자밖에 없을거야, 너 속은거야!” 또 한번 잔혹한 말을 했다.
나는 이때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친구들한테 내가 속았을거라고.. 친구들이 나를 놀리려고 속이는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의 말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의 일은 어찌됐는지 이상하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 번째는 어릴 적 내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놀러 나간다고 할 때마다, 엄마가 물어보았던 질문이다. “ㅇㅇ이가 먼저 놀쟀어? 니가 먼저 놀자고 한거야?” 이부분에서 나는 나중에 엄마가 얼마나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 애는 장애가 있으니까 배려를 받아야해. 우리 애랑 노는 친구는 누구든 우리 애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놀아야해.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장애에 대한 명백한 편견이다. 어릴 적의 나에게 엄마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보였다. 나의 장애가 너무너무 창피하고 쪽팔려서 친구네 엄마가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 나의 장애 때문에 내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배신당할거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나는 장애가 있으니 모두에게 배려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 모든 편견어린 생각들의 총집합을 우리 엄마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네에서 내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우리 엄마는 나를 꼭 옆에 석상처럼 세워두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우리 애 다리 좀 봐요! 얘가 어릴 때 기형으로 태어나서 제가 얘를 데리고 ㅇㅇ병원에, 또 ㅇㅇ병원에, 그리고 수술도 하고 얘를 업고 다니면서 또 그래서 얘가 친구가 없어요. 사람들을 그렇게 의식을 하고 친구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얘를 어떡하면 좋죠?”
나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번씩 이런 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오랜 시간 남 앞에 서서 불쌍함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친척들을 만날 때도 똑같았다.
“얘가 친구가 없어. 장애가 있어서 말이야”
엄마에게 나는 그야말로 불.쌍.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장애가 있어서 불쌍한건지, 불쌍해서 장애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유년시절의 나는 엄마가 팔고자 하는 불쌍함과 얻고자 하는 동정심을 받는데 물건처럼 사용되어졌다.
그 때에도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엄마, 장애가 있어서 힘든 건 나야. 놀림은 받는 것도 나고, 잘 못걸어서 힘든 것도 나고. 나는 그치만 힘들지만, 괜찮았어. 친구가 없는 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어.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 보다, 도서관에 쳐박혀서 책을 읽는 시간이 더 행복해. 사실은.. 그 친구의 아주머니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날 창피하게 여기고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고 말해? 나는 동정심을 받아야 할 정도로 불쌍하지 않아.
이러한 내용을 엄마에게 용기 내 말해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속에서는 늘 천불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날 콤플렉스로 여기는 것은 엄마 당신 뿐인데.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모두 제한하고, 오직 공부 뿐이라며. “너는 장애가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을 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널 무시못해. 넌 무조건 공부만이 살 길이야” 라고 말하던 사람은 엄마 뿐이었는데.
엄마는 늘 내가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장애를 숨기려고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주입시킨 것은 엄마 당신이었다. 눈치보는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고 장애를 창피해 하던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와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과 사고 속에 갇혀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내가 하고싶은 일을 못하고 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꽤나 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보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