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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Sep 10. 2023

노약자석과 신호등

마음이 부서진 이야기

나는 노약자석과 신호등을 보면 마음이 이상하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교복치마를 입고 학교를 다녔다. 나의 종아리는 오랜 기브스로 인해 근육이라곤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빼짝 마른 모습이다. 빼빼로나 젓가락처럼 말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내가 교문을 들어서거나 학교 건물을 지나다니거나, 하교 때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 나는 수많은 웅성거림을 마주해야했다.     

 

“꺅!! 저것좀봐!! 부러질 것 같아!! 어떡해!!”

“완전 젓가락이네?ㅋㅋㅋㅋ”    

  

이 말들은 내 학창시절 내내 들어야만 했던 말이다. 내가 지나다니는 모든 길 마다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댔다. 앞에서는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하는 눈빛들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동안 이 수근거림에 시달렸지만,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물론 나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날 놀리고 우습게 보는 것은 그나마 참을 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와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 또한 나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나를 향한 수많은 수근댐과 마주해야 했다. 물론 그 친구들이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내 기억에 어떤 친구는 날 배신했고, 어떤 친구들은 내 곁에 끝까지 남아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친구들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마음을 열고 주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으면 친구들도 놀림감이 되고, 나로 인해 피해를 받는 거니까. 나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하교할 때 나는 늘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야 했다. 한 20미터 쯤 거리에서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졌다거나, 이미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가 10초 가량 남았다고 했을 때, 이 상황에서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걸음은 느렸고 살짝씩 뛸 수는 있지만, 뛰었을때의 내 걸음걸이는 더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굳이 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안되는 친구들은 가끔은 날 위해 다음 신호를 기다려줬고, 어떤 친구는 나에게 “야! 빨리와!” 라며 손짓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 횡단보도를 보면 긴장부터 한다. 내가 횡단보도 앞에 딱 섰을 때 10초 후에 초록불이 켜져야 할텐데. 만약 횡단보도로 향해 가고 있는 중간에 초록불이 켜지면 나는 건너지 못할 확률이 높다.   



버스에 타고 나서도 나는 또 다른 긴장과 불안감을 느낀다. 얇다란 두 종아리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교복 치마를 입은 날 보고 오지랖이 넓은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노약자석을 권해주는 것이다. 순간 나는 수치감에 휩쌓였다. 내 친구들과 또 나를 향해 수근대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함께 탄 버스에서 내가 노약자석에 앉는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너무 창피하고 수치심이 들어서 얼굴이 빨개지며 아주머니들의 권유를 한사코 거절했다.      

제발, 내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날 노.약.자.석.에 앉는 수치감을 주지 말아줘.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이 너무너무 싫고 미웠다. 분명 그들은 선의의 마음으로 날 배려한 것인데도 말이다. 또 길 위에서 마주하는 어르신들은 멀리서부터 내 다리를 빠안히 쳐다보고 어떤 분은 나에게 직접 다가와 “학생, 이렇게 걸어봐 이렇게!”라고 훈수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수치심은 나의 몫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현재도 여전히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나의 장애는 여름에 맨 다리를 드러내는 시원한 치마를 입을 때가 아니면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나의 다리는 반바지를 입을 때 종아리의 빈약함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반바지를 사 입은 적도 없다. 때문에 나는 사시사철 긴 바지만을 입고 다닌다.    

  

가장 힘든 점은 역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다. 대중교퉁올 이용할 때, 나는 반드시 안정적으로 잡을 긴 손잡이 같은게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몰려서 잡을 데가 전혀 없으면, 넘어질 듯 말 듯 심하게 휘청거리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하거나 혹은 두 손을 아무데도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중심을 잡아 자유롭게 핸드폰을 하는 모습인데. 나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그 잡은 손에 온 힘을 실어 중심을 유지해야 하기에, 핸드폰 사용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30분 정도의 짧은 이동은 나도 괜찮다. 하지만 1시간 가까이 서서 가는 일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 사람들이 일어서서 자리가 비는 곳만 기다린다. 장애가 없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괜시리 서럽기도 하다. 이보세요들!! 나는 장애인이라고요!!!!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하지만,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해서 양해를 구하지도 못한다.  

    

이런 나에게 노약자석이란, 그림의 떡과도 같다. 왜냐하면 나는 70살 먹은 노인도,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긴 바지를 입으면 아무도 모를 나의 장애상태. 어떨때는 참 억울하기도 하고, 장애인이라고 써 붙이기도 민망하고. 요즘 전장연 때문에 안그래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안좋은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려를 바라는 일은 현 사회에서 나에겐 사치와도 같은 일인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이런 불편감들을 겪으면서, 학창시절 나에게 노약자석을 제안해 주셨던 아주머니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자존심과 수치감에 아주머니들을 마음속으로 미워했지만, 사실은 어쩌면 다정한 따뜻함이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증 장애라는 것이, 참 여러 복합적인 마음이 들게 한다. 내 마음속에서는 배려받고 싶으면서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그들이 나를 배려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나는 과연 배려를 받고 싶은 걸까? 배려 안해주면 배려 안해준다고 화가 나고, 배려해주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난리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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