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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Sep 16. 2023

엄마의 음식

마음이 부서진 이야기

엄마는 장애 관련한 것들 뿐 아니라,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일단 엄마 하면 드는 첫 생각과 느낌은... 안쓰러움이다. 엄마는 내게 참 안쓰러운 사람같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서서히 병들어갔다. 원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그냥 애정이 결핍된 아픈 사람이었다.     

 

사실 엄마의 유년기나 과거 어떤 힘든 경험을 했는지는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드문드문 알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 그것만 들어봐도 엄마가 얼마나 결핍된 환경에서 살아왔을지, 또 얼마나 힘들었을지가 느껴졌다.

     

엄마는 같은 직장에서 우리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처음에는 자상하고 좋은 남자친구이자 남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몇 년을 못가서 돌변했다. 외도와 도박은 물론이요, 엄마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 나의 몇 안되는 기억 속에도 엄마는 늘 맞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 엄마가 죽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어린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우리는 괜찮으니, 얼른 도망가!”      


이후에도 아빠의 폭력은 계속되었다. 엄마는 폭력에 못이겨 점점 나에게 하소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중에는 나에게 온갖 화풀이를 하게 되었다.


당시 어렸던 나는 너무나 의젓한 꼬마였다. 엄마가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나도 힘든 일들이 많지만, 엄마에게 힘듦을 가중시키지 않으려면 나라도 똑바로 잘 살아야겠다고. 나는 괜찮다고.   

  

이런 과정으로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봤을 때, 넌 참 밝고 명랑하구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나에게 분풀이가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애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어서 개고생을 하면서 키우고, 남편은 바람피우고 날 폭행까지 하고. 사람들!! 날좀 봐요!!!!! 날좀 불쌍하게 봐줘요!!!!!!! 난 이 모든 것을 보상받고싶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힘든 것들을 숨겼고, 엄마가 나에게 아무리 화풀이를 하더라도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로부터 받은 가장 큰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애정이 듬뿍 담긴 엄마의 음식 이라고 답할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우리의 끼니를 한 번도 건너뛴 적이 없다. 마치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며 그 업을 숙명으로 삼는 사람처럼 말이다.      


엄마가 해 주었던 음식들은 모두 기억이 난다. 토마토를 직접 삶아 만든 대용량의 토마토 스파게티, 달걀 이불에 토마토 캐쳡을 모양 내 뿌려줬던 오므라이스, 각종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 속이 꽉 차게 만든 엄마표 김밥. 생일날이면 항상 끓여줬던 미역국과 잡채.      



그 중에서도 돈가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우리와 기차여행을 가거나, 소풍을 갈 때마다, 돈가스를 튀겨서 이동 중에 먹여주었다. 시중에 파는 그런 돈가스가 아니다. 소고기를 사서 방망이로 연하게 다진 다음, 튀김가루를 입혀 만든 정성담긴 돈가스였다. 돈가스 소스도 엄마는 직접 만들었다. 그것을 가위로 네모낳게 잘라서 먹기 편하게 우리에게 준 것이다.    

  

또 엄마는 한번 화를 내면 불같아서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빠와 나는 엄마랑 그렇게 싸우고 나면 하루 이틀 말을 하지 않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 때에도 우리 끼니를 항상 챙겼다.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보며, 아 엄마가 날 사랑하는구나. 라고 느꼈던 적이 많이 있었다.  

    

엄마의 음식은, 유일하게 몇 안되는 엄마의 애정표현과도 같았다. 지금도 엄마랑 싸우다가 화가 풀릴 시점에는 엄마가 먼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 엄마에게 있어 음식은 참 중요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이 음식으로 인해 우리가 아직도 애정하는 사이로 이어져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나는 엄마의 음식이 궁금하다. 또 어떤 음식을 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까? 많이 서툴지만, 또 그냥 너무 서툴지만, 자식이라고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해주는 것을 보면 참 짠하기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온다.

     

오랫동안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이었으며, 사실 현재도 진행중이지만, 어떤 때는 엄마의 음식 하나로 퉁 치고 말때가 있다.


사실은 마음 깊은 속에서 아직도 나는 엄마의 사랑이 간절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음식은 엄마가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 표현이며 애정 방식이니깐. 그래서 더더욱 엄마의 음식을, 아니 애정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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