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말바위 전설
역사와 관련된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견훤의 출생지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농민의 아들이면서 후삼국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인물 견훤은 지금 문경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라 서남해 지방의 방어를 맡아 공을 세우고 비장(裨將)의 자리에 올랐는데 어릴 때부터 풍모와 기개가 남달랐던 견훤은 장성해 군인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라를 세울 생각이 있던 그는 신라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형성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전라도 지역의 농민들이었다.
문경지역에는 견훤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내려 오는 곳이 적지 않다. 견훤이 태어났다는 곳에서부터 견훤이 훈련을 했다는 곳과 다양한 지명도 그와 연결이 되어 있다. 이곳은 문경 가은읍이라는 곳으로 가은읍의 한 학교는 지금 비어 있는 상태이다.
누군가를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기 전 궁기리에 살고 있을 때 연천리의 큰 바위에 용마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제 견훤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본다.
밭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말바위라는 곳이 나온다. 견훤은 용마를 타고 용마의 걸음이 화살보다 빠른지 시험해보기로 하고 가은의 산 쪽으로 쏘는 동시에 말을 몰았다고 한다. 견훤을 태운 용마가 가은의 산에 다다랐으나 날아오는 화살이 보이지 않았는데 용마가 화살보다 늦었다고 생각한 견훤은 용마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그 후에 화살이 날아온 것을 보고 후회했다고 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말은 떠나보고 나서야 아는 법인가 보다. 그가 용마의 목을 베고 아차 했다는 아차산 쪽으로 들어가 본다.
밭 사이로 들어가야 말바위를 볼 수 있다. 저 앞에 있는 산은 아차산으로 아차 하면서 크게 슬퍼하고 후회했다고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말바위는 용마가 나온 큰 바위라고 한다. 한때 호랑이의 기운으로 거침없는 승전을 거듭하고 나라를 세워 천하를 호령했던 무장이며 가장 세력이 강했지만 고려와의 패권 다툼에서 밀린 후백제는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때의 영광을 다시 찾지 못하고, 936년(태조 19)에 멸망하였다.
말바위의 기세가 남다르게 보인다. 문경에는 견훤의 전설도 있지만 추후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일조를 한 신숭겸을 모시는 공간도 있다. 견훤이 신라를 공격했다는 소식에 불안해진 왕건은 군사를 보내 후백제로 돌아가는 견훤의 부대를 공격했는데 이 전투에서 견훤은 왕건의 부대를 크게 물리쳤다. 왕건은 여기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신숭겸(申崇謙) 등의 희생으로 겨우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