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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라는 자산

1936년과 2024년 달라지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생애주기에 있어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시간의 가치가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신체적인 상태나 정신적인 능력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이용해서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은 주어져야 하며 쉴 수 있는 시간과 식사시간도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제작된 영화로 찰리 채플린이 감독을 했던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화 물결 속에서 기계 같은 삶을 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대공황 직후인 1936년은 가난과 실업, 파업,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 기계의 횡포와 마약이 야기하는 불안에 직면해 있었다. 포드자동차는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사람을 기계처럼 활용하는 표준화를 하여 대량생산을 통해 제품 가격을 하락하였다. 이른바 대규모 기업의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업무강도를 높이며 생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


모던 타임스 속의 자본가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시하는데, 그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점검당하며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 하면 스크린에서 사장이 불호령을 내린다. 1930년대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19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다를 것은 없다. 그때에도 던지려는 메시지는 인간의 개인적 가치 회복을 호소하고 있지만 지금도 다를 것은 없다. 어차피 돈이 필요하고 선택은 개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걸 착취라고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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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크게 성장한 기업은 바로 플랫폼 기업들이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쇼핑 플랫폼과 배달로 대표되는 배달의 민족등이다. 이 기업들은 대규모 플랫폼에서 필요한 사람들을 기계 같은 존재로 끼워 넣어서 큰 규모의 일들을 해치운다. 작업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등으로 엄청난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처리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신청하고 자신이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빠르게 주문하고 빠르게 받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 이면에 어떤 노동이 필요한지 혹은 어떤 사람들의 땀이 흘려졌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대량생산이 되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만약 쿠팡 같은 쇼핑 플랫폼이 없었다면 빨라야 2일이나 길면 일주일도 걸려야 했으며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보부상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주기까지 하송세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유용한 자산은 자신이다.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몸과 시간뿐이라면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과로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효율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은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인간적으로 배려하고 충분한 인력을 배치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인간적인 기업이라면 상장은커녕 역사 속으로 사라질 테니 말이다.


무리를 지어 도살장으로 양 떼들이 내몰리는 모습의 숏에서 지하철에서 나와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히 도로에는 무리하게 달리면서 배달하는 사람들이 굉음을 전달해 주며 플랫폼 속의 기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세상에서 빠르게 사라져 간다. 자신이라는 자산을 업그레이드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인 논의로 그걸 해결할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 자신이라는 자산의 가치를 높이지 않는 것도 비인간적인 일을 선택하고 버티는 것도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중받고 인간적으로 대접받으며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극대화되지 않으며 거대기업도 출현하지 않고 사회가 이처럼 편리해지지는 않는다. 100년도 더 된 효율성과 경제성을 극대화된 시스템은 지금도 유효하고 이미 상장된 기업부터 신생기업까지 따라 하고 있다. 몸뿐이 없고 전문화된 영역이 없는 이상 숙련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고 이동시간 및 휴식시간등을 최소화하여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부품처럼 취급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정도가 더 지난다면 더 인간적인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서비스가 제공이 될 것이고 그 이면에는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일자리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유효한 것은 시대에 맞는 자신이라는 자산을 제대로 만들었을 때야 비로소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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