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옳고 그름을 분간해 낼까.
사람들마다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은 모두 각자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다른 이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필자는 일찍이 정신적으로 부모와 분리되었다. 그런 가정환경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독립적인 삶과 생존에 대해 고민을 일찍이 해왔다. 그렇게 살 때 필요한 것은 삶에서 필요한 가치관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주변에 올바른 가치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그 길을 책에서 찾았다.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정신적에 있다는 것대 확신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호기심도 많고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인들에게는 여러 형태의 콤플렉스가 있다. 그런 콤플렉스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적절한 관계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심리적 단계로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오디이푸스 콜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다.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자라나지만 많은 과정 속에 사회적 규범을 이해하고 도덕적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는 부족하기에 학교등에서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학교에서만 발생하고 멈추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른이라는 것은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였다는 존재가 되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 4월 28일 광주 너릿재 인근의 저수지에서 사람이 물 위에 서 있는 자세로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건져 올려보니, 수상한 물체는 놀랍게도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시신이었다. 사망한 사람은 목표에 살고 있었던 13살의 P 양이었다고 한다. 수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자수했다. 그는 사망한 지수 양의 친어머니와 현재 동거 중인, 지수 양의 의붓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는 P양이 살해되기 전에 음란 사진을 여러 차례 보내고 성추행을 여러 번 일삼았다고 한다. 그의 뒤에는 P양의 친엄마가 있었다. 세 번째 결혼을 했던 친엄마는 자신의 딸을 세 번째 결혼한 남자와의 경쟁상대로 생각했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성숙하지 못한 것을 넘어서 사회규범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던 친엄마와 계부의 공모 살인사건이었다. 첫 번째 남편과의 이혼,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에 P양이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P양은 친부와 살기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는 친엄마와 살기를 원했지만 친엄마는 새로운 남자와의 사이에 아들도 있었고 전남편의 딸이 찾아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 번째 남자와의 사이에서 성적인 접촉이 있게 되면서 분노를 하게 된다. 그 분노의 대상은 남자가 아닌 자신의 친 딸이었다.
급기야 참다못한 P양이 경찰에 신고했고, 이를 알게 된 후 살해가 되었는데 그 사건을 주도한 것은 친엄마였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자신의 남자를 넘보는 것이 친 딸이라고 확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살해 현장에 버젓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친딸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 사건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 보면 그들은 그 사건에 분노를 하지만 그들이 온전하게 그 사건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의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렵다. 온전하게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는 척하는 것뿐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깨달은 것은 이길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면 이길 수 있을 때나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사랑을 원 없이 베풀어주는 가정에서 태어날 수가 없다. 정상적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니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규범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일반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콤플렉스를 가지면서 성장하기도 한다.
정서적 학대는 매우 불안한 상태를 야기하게 된다. 누군가가 잔인하게 행동하게 되는 이면에는 그런 행동들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보다 지금 앞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빠르게 성장한 덩치가 큰 청소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성장한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정신적인 뿌리가 얕게 자리를 잡았다. 필자와 같이 어릴 때부터 그 길을 책에서 찾았다면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조부에서 부모,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정신적인 세계관은 아주 짧은 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국인만이 가진 콤플렉스는 앞으로 발생하게 될 강력사건과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가지고 있다. 정상적인 이라는 표현을 누구나 하고 있지만 그 기준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을 내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각자의 역할답게 살 수 있는 가치관을 각자의 사람들에게 만들어주는 교육과 사회분위기가 선행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사회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어디선가에서 터질 사회문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