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한 연예인이 쏘아 올린 공이 전통적인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많은 메시지와 울림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약자에 대한 관점은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다. 산업사회에서의 직업은 비교적 남자가 일하기에 적합한 환경이고 여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경제적인 것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남자가 당연히 선호가 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남녀 간의 결합은 힘이 얼마나 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신체적인 능력이 더 나은 남자가 울타리를 만들고 여자와 아이를 감싸는 형태의 가족이 전통적인 모습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돈을 버는 데 있어서 신체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몸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분야는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 일명 막일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남자는 결혼을 하는 것도 예전 같지가 않다. 예전에는 가족을 형성함에 있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출산이었다. 출산과 부양이 함께 이루어졌던 것이 과거의 결혼문화였다. 이후에 사회는 바뀌었다. 힘을 쓰는 직업은 많지가 않아 졌다. 서비스업도 극한의 근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는 것은 음양의 조화 혹은 유전가가 만들어놓은 본성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출산을 결정하면 남자가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관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임신과 출산은 거의 오롯이 여자가 결정할 일이며 자유의지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소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한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가 같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아이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한다는 것은 과거의 가치관일 뿐이다. 결혼과 출산이 별개의 관점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평균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삶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부모가 될 자격이 되지도 않았고 부모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홀로 서있지도 못한 사람이 만나게 되면 이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온전히 홀로 서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누구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공자는 40에 이르러 불혹의 나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공자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 공자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 많지가 않다. 공자는 홀로 서서 살았으며 비로소 흔들리지 않을 시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홀로 서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란 어렵다.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의 역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온전한 사람의 형태가 아닌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것이 온전한 관계일 수 있을까.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사람이 누구의 도움이 없이 홀로 서있을 수는 없다. 결혼을 통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에 다른 역할을 했던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해 줄 이성을 원한다면 그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공자는 50이 되면 지천명이라고 했는데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게 된다는 의미다. 50이 되어서도 철없는 사람들도 많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그렇기에 종교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의 평등은 모든 것이 대등하게 등가교환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이나 헌신을 요구하는 역할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약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고민해 보고 행동할 것에 대한 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