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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6. 2024

한국인의 단상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간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전 세계인들도 한국인과 그렇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인들은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근거 없는 믿음에 기반해서 많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실패를 겪기도 하며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어떤 유명세나 알고 지낸 시간, 대기업등의 간판이 생기면 상당히 신뢰를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 성장하면서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특히 탐욕은 그 누구도 쉽게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가장 이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 영향도 줄일 수 있고 바람직한 상태로 나아갈 수가 있었지만 그 어떤 정부도 그런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온갖 좋은 제도라던가 바뀌어야 할 것은 OECD를 거론하면서 왜 그것만은 한국만의 문화라고 놔둘까. 자신이 살집을 구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걸 정부에서 보증하는 괴상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제도의 기반에는 한국인들의 욕심과 건설사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경제성장률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는 데 있어서 정말 입지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모든 돈을 펌프질을 해주는 것이 정부이며 개개인의 사람에게 내준 전세대출이 기반이 되었다. 사실 집주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 이자를 세입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정상적인 형태다. 그런데 그걸 언급하면 월세 내서 언제 집을 사느냐는 뻔한 스토리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사실 월세내고 그냥 그달 그달을 살아가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 없으면 자신의 주제 것 사는 것이지 월세를 내서 목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무능력일 뿐이다. 정말 살집이 없으면 임대주택을 통해 공급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말도 안 되는 민간주택의 가격을 그들의 대출로 지탱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보증해 주었던 돈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즉 보증보험에서 감당하기에 힘들 정도로 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전세사기 문제도 역시 은행이 아무런 리스크 없이 그들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피해자가 양산된 것이기는 하지만 피해자들 역시 한국의 전세제도가 없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가격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의 탐욕은 공인중개사를 비롯하여 모든 투자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야 한다. 그렇자면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국내 보험사에서 영업을 하는 보험왕의 사례를 보기도 하는데 그들은 짧은 시간에 사기와 다름없는 행위를 하기도 하지만 10년, 20년, 심지어 30년의 시간을 두고도 사기를 치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정보를 보지 않는 이상 알고 지낸 시간은 신뢰라는 것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는 이유는 돈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박에 미친 사람의 경우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짓말을 일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던 사기에 당하든 간에 항상 발들여 놓기가 있다. 초기에 돈거래를 하면서 이득을 보고 그 이득이 주기적으로 6개월 혹은 1년이나 그 이상이 들어올 때 믿음을 가지고 결국에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10년을 알았던 20년을 알았든 간에 그냥 돈거래는 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약간의 이득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왜 자신에게 왔는지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다. 특히 보험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험을 가입함으로써 생겨나는 이득으로 인해 대납을 해서 실적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데 보험사는 문제가 생길 경우 절대로 책임질 생각은 없다. 


어떤 교육을 받던지 간에 어떤 공간을 가든지 간에 집단주의로 교육을 하게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모호해지게 된다. 필자의 경우가 독특한 생각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을 집단적으로 주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편이다. 한국인들의 집단주의는 결국 피해보지 않기 위한 결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결정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리게 되면 그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집단적인 경험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집단주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에 대해서 과할 정도로 후하게 평가하고 그런 이득을 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선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오류라던가 치명적인 결함이 없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이나 타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한국인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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