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모호한 기준은 선택의 실패를 불러온다.
한국인들은 착하다는 기준을 정해놓기에 많은 부분에서 실수와 실패가 만들어지게 된다. 외국인들은 착하다는 것은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나 장점이 될 수가 없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착하다는 그것만을 가지고 무언가 자질을 갖춘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의 착하다는 것과의 동의어는 순종적이다라는 것이다. "착하다 = 순종적이다." 자신에게 착한 것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잘 수용하고 거부하지 않으며 웬만해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
착한 사람에 대한 정의만큼 모호한 것이 없다. 어떤 것이 착한 것인지를 사실 판단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에게만큼은 불편하게 하지 않고 순종적이라고 판단되면 착하다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착한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흔하게 하는 말 중에 착한 사람의 예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가 않다. 법 없이도 산다는 것은 대부분의 손해를 감당하면서 살면서 법적으로 대응을 안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좋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착할 수는 있어도 착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착하다는 것은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을 때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여자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했다가 헤어진다던가 이혼을 했을 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래도 그 사람은 착했다는 말이다. 착했기 때문에 연애를 하던가 결혼을 했는데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착한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뉴스 등에서 수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고 나서 그 부모나 지인들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 사람 착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단면만 보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니 그것을 착하다고 본 것이다. 착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할까. 그 사람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보지 못하거나 억누른 상태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눈감으면서 살아가다가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착함이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망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착하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착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억누르고 자신의 실체를 찾지 못한 채 부모가 원하는 모습의 자식으로 성장하게끔 하는 것이다. 사춘기과정이나 중2병을 거치지 않은 아이가 착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인정욕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자라난 것뿐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삶에서 자식이 짐처럼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마치 아바타처럼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것이나 혹은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착함을 강요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실 필자는 사악한 쪽에 가깝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굳이 모든 것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나 조금만 고민을 하거나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굳이 참견하려고 하지도 않고 반대로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다. 그 대상이 약자라고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착한 것 하나 보고 결혼했다는 여성 중에 그걸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다른 다양한 장점이나 경쟁력, 경제관념등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착해~ 그래서 좋았다고 말한다면 그걸로 인해 나머지를 채워야 하는 매우 피곤해질 삶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할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가 않다. 착해 보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 혹은 누리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한국은 특히 착한 것에 대한 관점을 크게 생각한다. 착하기 때문에 적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구나라고 확증편향을 가지기도 한다. 정말 모든 것을 깨닫고 통달해서 착해진 사람이 아니라면 착한 것은 결국 착한 척을 하는 것이다. 착해서 선택한 사람이든 그런 사람을 위해 착한 척을 하든지 간에 결국 그 관계는 거짓으로 성을 올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관계의 끝에 행복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