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Apr 03. 2023

시감상<봄날>이문재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 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봄의 정서를 눈앞에 배달해 주는 시가 여기 있다.



막 벙글기 시작한 백목련만 주인공이 아니라



초고속 배달을 주업으로 해야 하는 생활인으로의



오토바이 주인이



이 시에서 봄날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본관 앞에 오토바이가 부아앙 좌회전하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넘어질 뻔하는 아찔한 이유가



교통상황 때문이거나 운전미숙이 아니라 ,



목련을 발견하고 지나칠 수 없었던



배달원의 봄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니,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다.



시구를 따라가며 무슨 일인지 걱정하는 시선은,



목련을 찰칵 찰칵 찍는 주인공의 행동에 멈추고,



무릎을 치게 된다.



대놓고 비유법 하나 사용하지 않고



고상한 상징 하나 없는 이 시가



봄의 정취를 드러내는 방식이 꾸밈없고 직설적이다.





막 피기 시작한 백목련의 아득하고 풍성한 이미지와



생활에 여유를 부릴 새 없을 법한 배달원의 대조는



봄날의 나른함과 여유,



그리고 설렘과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급한 일에 허덕이던 사람이라면 이 시를 읽고



놓쳤던 여유를 찾으며 계절을 만끽할 마음이 생기지 않



을까?



봄이 되니 몽글거리는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펼친 시집



에서 이 시가 눈에 띈다.





월요일이고 4 월초라 처리할 업무가 많은데,



시 한 편 읽고 나니



12시간처럼 쪼그라들어 보이던 하루가



36시간이 되는 양, 여유가 넘치기 시작한다.



#시감상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의자 같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