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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06. 2023

어찌어찌한 가을

계절의 길목 대충 넘기기

계절의 길목


최신애



밤에 민소매를 입어도 후덥지근하던 여름 끝

득한 느낌에 반팔옷으로 잠옷을 청했더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긴팔 잠옷을 꺼냈다.


밤공기의 한기가 아침에는 더 깊어져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며 일어난다.

두꺼운 이불을 준비하고 가볍던 차렵이불을

수다스러운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미끄러운 세제와 가글거리는 거품 속으로

여름냄새가 잦아든다.

이렇게 여름이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은

바지런한 손길을 부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계절의 길목을 넘어가는 일이

더 빨라지는 일이며, 몸은 더 느려지는 일인 듯.

어영부영하다가 여름옷을 그대로 걸어둔 채,

패딩조끼를 일상복으로 입고 털 실내화를 신고

거실을 어슬렁거리고야 만다.


젊을 때는 극도로 싫던 게으름을, 이제는

면면이 누리고 부리니 마음이 헐거워진다.

바지런함 보다 느슨함을 자주 찾는 시간.

마치 일어나기 싫어 이불을 당기듯

가을은 죄 되지 않고 한가롭다.


계절의 길목은 좁고 완만하면서도 짧다.

뭐 어떤가. 나의 공간, 나의 사람, 나의 시간을

순하게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그냥 두기도 하면서

가을의 중심부를 응시한다

"넘어가며 사는 게 기특한

계절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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