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나의 20대는 실패 투성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국립대 컴퓨터교육과에 입학했다. 중고등학교때는 자연계니까 막연히 ‘의대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닥터 노구찌>라는 만화가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노구찌는 의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어릴 적 손에 장애가 생겨서 의학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 당시 의학자가 되기 위해서 꼭 의대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명공학에 더 가까울 것이었다. 그냥 자연계면 의대를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나도 따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결국 수능을 잘 보지 못해서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다. 컴퓨터교육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부모님과 작은누나가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교원자격증 2급이 나오니 괜찮지 않겠냐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게임은 좋아했지만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결정을 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컴퓨터교육과의 전공수업은 참 재미가 없었다. 1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는데 이걸 왜 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흥미도 없는 것을 억지로 했다. 과 특성상 동기들은 선배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프로그래밍을 연습했다. 나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냥 학교 수업을 마치면 영어학원을 다녔다. 실력은 점차 벌어졌다.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프로그래밍은 거의 늘지 않았다. 특히 동기 중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보면서 ‘아,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좌절감을 맛보았다. 1학기를 마쳤을 때, 수능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할 때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다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수능을 다시 본다고 해서 잘본다는 보장도 없었다.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그냥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다.
2학년이 되자, 복수전공으로 영어교육과를 선택했다. 작은누나는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 컴퓨터를 못해도 영어공부는 손놓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나서 선택한 것이었다. 컴퓨터는 싫었지만 영어는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고 교원자격증이 있으면 다른 과목으로 임용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영어교육과 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영어교육과의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못하는 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2학년 1학기의 성적은 정말 좋지 않았다. 전공인 컴퓨터교육은 물론 영어교육과의 과목 또한 성적이 좋지 않았다. ‘복수전공을 하면 타과생은 점수를 짜게 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말을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학점관리가 안 될 것 같아서 2학기 때는 영어영문학과로 복수전공을 바꾸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영어영문학과도 상위 성적을 받으면 교원자격증이 나온다고 했었다. 영문학과의 수업은 꽤 재미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수업을 했고 영문법, 영문시 강의 등 2-3과목을 수강했다. 성적은 다행히 A+이 나왔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훈련을 받은지 1주 지났을 때 조교가 나를 부르더니 혹시 조교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훈련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물어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사범대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조교가 멋있어 보여서 지원을 했고 면접을 3차례인가 보고 조교로 선발이 되었다. 조교 생활은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다. 좋지 못한 고참들이 많아서 새벽에 흡연장으로 끌려가 맞았다. 얼굴을 때리면 걸리니까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얍샵한 녀석들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그 사람들이 전역하고 나서부터는 그래도 지낼만 했다. 훈련병들을 교육하고 일과를 마치면 7시 정도 되었는데 그때부터 밤에 연등 신청을 하여 12시까지 5시간 정도가 있었다. 나는 그 때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수능 공부를 다시 하게 된 것은 당시 읽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라는 자선을 읽고 나서였다. 보통은 인물의 자서전을 읽으면 그 사람의 행한 것에 관심을 갖는데 나는 이명박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것에 꽂히고 말았다. 대단한 기업가가 되려면 명문대를 나와야할 것 같았다. 남들보다 늦긴 하겠지만 좋은 대학교에 가면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내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학벌 콤플렉스와 학과에 대한 불만족이 융합되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되는 듯 하다.
그렇게 1년 정도 수능 공부를 했다. 평일 5시간,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수능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능을 보러 가지 않았다. 원서 접수도 하고 수능 일주일 전에 때맞춰 정기휴가도 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모의고사를 풀어봤는데 내가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고 그런 불안함들로 인해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끝까지 시도해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