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군대에서 전역한 후 3학년 복학을 하기 전에 방학때 컴퓨터교육과의 프로젝트실습이라는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1년 간 팀을 이루어 게임이나 응용프로그램 등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다보니 남은 2년 간 컴퓨터를 공부하기가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싶었다. 나는 3학년 전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경영학과로 전과를 하고 싶었으나 3학년 TO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학과로 전과를 할지 고민하다가 군대에서 읽었던 김주하 앵커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를 감명깊게 읽었던 것이 생각났다. 평소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기에 방송기자가 되면 좋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방송기자의 출신 학과를 검색해보니 1위가 신문방송학과였고 2위가 정치외교학과였다. 내가 다녔던 대학에는 신방과는 없었고 언론홍보학과가 존재했는데 3학년 TO는 없었고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정치외교학과로의 전과였다. 보통은 타학과에서 사범대학으로 전과를 하는데 나는 반대로 했다.
정치외교학과의 수업은 꽤 재미 있었다. 정치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업과 관련하여 뉴스기사와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재미 있었던 수업은 ‘비교정치론’이라는 과목이었다. 그 과목의 교수님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수업에서 책을 읽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주는 편이었다. 그동안 책을 읽을 때 그다지 비판적으로 읽지는 않았었는데 그때부터 ‘저자의 시각이 꼭 맞지는 않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교 3, 4학년때는 수업 이외에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기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대회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기자단이 유행할 때였다. 나는 정부부처의 블로그 기자단을 포함하여 7개 정도의 대외활동을 동시에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나름 재미 있었다.
3학년때부터 조금씩 방송기자 시험을 준비했다. 대외활동을 하며 3-4학년을 보내고 나니 졸업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대로 졸업을 해버리면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할 수 없어 메리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졸업을 1년 유예했다. 그리고 대외활동을 하며 받았던 원고료와 활동비를 모아 서울에서 KBS방송기자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강의을 받았다. 나의 첫 서울 생활이었다. 현직 방송기자와 교류하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나름 재미가 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아카데미 학우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언론고시 준비를 했다. 아카데미 학우들은 기자라는 직업에 저마다 명확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쓴 기사를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심오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단지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기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많이 흔들렸던 것 같다. 마음이 흔들리자 스터디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방송아카데미는 졸업했지만 한 달 정도 고민한 끝에 기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일반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2012년 여름, 서울의 작은 홍보대행사에서 짧게 인턴 생활을 했다. 홍보대행사를 선택한 것은 내가 했던 기자 대외활동과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홍보대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일반적인 사건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라면 홍보는 특정 대상에 대해 알리는 행위라는 점이었다. 처음하는 사회생활은 꽤 어려웠지만 그래도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있어서 의지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8월이 끝나갈 쯤에 대기업을 가고 싶어서 취업에 집중하기 위해 퇴사를 했다.
1년 반 동안 100여 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을 했다. 방송기자에도 미련이 남아서 기자시험을 같이 준비를 했다. 하지만 2013년 상반기까지 그 어떤 회사에도 최종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땐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