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의 낙방, 하노이행 티켓을 잡다

by 해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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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취업을 준비하며 100번 넘게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지만 최종 합격하는 곳은 없었다. 너무 초조했다.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언젠가 끝나겠지 생각하며 지원서를 작성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Global YBM이라는 프로그램을 알려주셨다. 찾아보니 예전 대기업이었던 D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만든 '베트남 청년창업가 양성과정'을 뜻하는 말이었다. 해외취업을 도와주고 현지 창업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였다. 취업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기도 했고 젊을 때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원서를 작성해서 보냈고 필기시험과 영어시험, 면접시험을 보았다. 며칠 뒤, 나는 추가합격으로 Global YBM 3기에 선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3개월의 베트남어 초급 과정을 받은 후 출국하여 현지에서 9개월 간 중고급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해외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할지 선택할 수 있었다. 9월쯤 연수원으로 입소를 하게 되었다.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났다. 전문직 준비를 하다 온 사람, 인도 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온 사람, 5개 국어 이상을 하는 사람 등등 나와는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서 충분히 취업을 할 것 같은데 왜 여기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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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는 성조가 너무 많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묻고 이야기하며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3개월 뒤, 나를 포한한 연수생들은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하게 되었다. 하노이의 생활은 꽤 재미 있었다. 우리는 오전 체조를 시작으로 오후까지 베트남어와 영어 수업을 받으며 합숙생활을 했다. 하노이 문화대학교 학생들이 봉사 개념으로 우리의 베트남어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다. 이방인이었던 나를 친절하게 대해줘서 기분 좋게 언어 교환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미숙했던 베트남어였지만 조금씩 성조에 익숙해지고 내가 말한 문장을 현지인이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9개월 동안 베트남어를 숙달하며 고급 과정까지 마쳤다. 선배와의 대화 시간도 있었다. 내가 3기였는데 이미 1, 2기를 수료하여 베트남에 정착한 선배들이 강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한 선배는 베트남 현지 섬유회사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어를 잘하는 선배라서 취업과정이 원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선배는 경험을 쌓은 후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데 나중에 소식을 들어보니 정말 베트남에서 창업을 해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고 베트남인 여성과 결혼도 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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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를 앞둔 어느 날, Global YBM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D단체에서 연수생들을 불러 모았다. 어떤 과정으로 취업을 하면 되는지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D단체로 베트남 현지에 법인이 있는 한국회사들이 잡오퍼를 주면 리스트화해서 연수생들을 매칭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D단체에서는 연수생들에게 기업리스트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연수생들이 몰릴 수 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었다. 나를 포함한 연수생들은 각각 연수를 관리했던 팀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회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연수생들의 종합해보면 리스트에는 한국에 있는 중견, 중소기업이 있었는데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았다. 한 번이라도 들어본 업체도 있었지만 아예 처음 들어보는 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는 마음에 드는 회사가 없다며 본인이 개별적으로 찾아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전공과는 상관 없었지만 IT나 전자쪽 회사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회사의 TO는 거의 없었고 결국 가장 수가 많았던 섬유업체 중 중견기업인 H사의 베트남법인 H비나에 지원하게 되었다. 직무는 생산관리였다. 생산관리는 고려해본 적 없었지만 D단체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생산관리 직무로 채용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당시에는 취업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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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관련된 연수생들의 주요 이슈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그 회사가 ‘주재원 대우’를 해주냐, 안 해주냐’ 하는 것이었다. 주재원은 한국 본사에서 현지 법인에 직원을 파견할 때 대우를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재비를 월 700~1000달러 정도 주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연봉이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주재원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연수생들의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재원과 현지채용 직원은 인식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나는 H사의 면접을 보러가기 전에 D단체 팀장님에게 이곳이 주재원 대우를 해주는 곳이냐고 물어봤다. 팀장님은 분명 이 회사는 ‘주재원과 현지채용의 구분이 없다’라고 하였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면접을 보러 갔지만 나중에 입사하고 보니 나는 현지 채용이었고 주재원은 따로 있는 회사였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인원이 H사 면접을 보러갔다. 준비를 꽤 하고 갔지만 면접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4명 중 나와 남자 동기 한 명이 H비나로, 당시 내 여자친구였던 여자 동기와 다른 친구는 각각 다른 법인으로 배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H비나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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