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라는 이름표

by 해모리
1.png

2015년 10월, 나는 약 2년 간의 베트남 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왔다. 해외 경험을 쌓았지만 마음속엔 막연한 불안뿐이었다. 곧 서른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돌아오자마자 쉴 시간도 없이 바로 취업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남들보다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도 서류를 한 50곳 정도 적었던 것 같다. 다행히 2년 전보다는 서류도 많이 붙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도 꽤 있었다. 약 세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 것 같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2일 오후 01_09_06.png

12월 말이 되자, 나는 세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의류벤더 S사, N은행, 식품대기업 C사이었다. 의류벤더 S사는 가장 먼저 합격 발표를 하였다. 베트남에서 일했던 곳이 의류벤더의 해외법인이었으니 그 경험을 잘 봐준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약간 보험 같은 느낌으로 지원했던 회사였다. 의류벤더에서 근무하게 되면 높은 근무강도와 잦은 해외출장, 그리고 장기 체류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했기에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N은행에서도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면접을 그리 잘 보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합격한 것 같았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해 회사 설명을 들으면서 경험해보지 않은 은행 업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2일 오후 01_12_53.png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식품대기업 C사에서 합격 문자가 왔다. 기쁨도 잠시,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세 곳에 모두 합격한 뒤, 어느 곳을 갈지 가족과 친척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N은행이지."

구체적인 이유보다는 마치 정답처럼 느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C그룹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았고 대기업인 C사에 더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C사에 다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제주에서 근무를 하다가 성과를 잘 내면 서울로 발령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C사를 선택했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2일 오후 01_14_29.png


나중에 알고보니 N은행도 제주지역에 몇 년 이상 근무하면 서울로 이동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몇 년 뒤, 투자에 관심이 생기면서 은행 업무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서 다시 지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서류조차 합격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까.

아직도 가끔, 그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전 04화베트남에서의 회사생활, 그리고 벤쩨에서 시작된 고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