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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또 다른 전쟁터, 포로수용소

<스윙키즈>

북미버전 포스터

철조망과 보초는 있지만, 총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다. 장난을 치고 웃음소리도 들리지만, 그들은 아직 분명 전쟁 속에 놓여있다. 영화 <스윙키즈>는 17만 명이 넘게 수용되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군 포로, 중국군 포로 속에 적군으로 오해받은 민간인 포로도 뒤섞여있다.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속 그들의 여유로운 일상은 미국, 남한, 중국, 북한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판타지적 공간을 창조한다.

영화의 고증이 된 사진과 영화 속 장면

     빌리 와일더가 그린 <제17 포로수용소(1953)>의 모습처럼 포로수용소라는 곳은 그 자체로 독특한 공간이다. 분명 적군이지만 제네바 협정에 의한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빌리 와일더가 포로 사이의 불신과 배신에 초점을 그렸다면, 강형철 감독은 적대시하는 두 포로 진영 간의 계속되는 이념전쟁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전쟁을 공산주의의 중국과 자유주의의 미국 등 강대국 사이의 이념 대리 전쟁터라고 한다면, <스윙키즈> 속 거제 포로수용소는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면 많은 전향자를 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한 포로수용소 미군 소장의 자유주의 전파는 또 다른 대리전쟁을 양산한 셈이다. 영화 속에서는 탭댄스가 바로 그 자유의 맛을 경험하게 한다.

전쟁으로 인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남북미중 4인

     축소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공간에 제각기 언어도 다른 다양한 사연의 인물들이 탭댄스를 춘다. 감독은 실재했던 판타지적 공간에 상상력을 맘껏 풀어놓는다. 초반부 등장하는 여러 코믹한 에피소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통역 없이 대화하고 몸으로 소통하는 설정은 의도적으로 관객이 이 공간을 판타지로 느끼게 한다. 이곳 역시 그저 사람 사는 곳이며 전쟁을 잠시나마 지우고 있다. 이는 후반부를 위한 설계이다.

가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혼신의 점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것과 같다면 로기수의 탭댄스는 살기 위한 발버둥과 같다. 밑에 딸린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돈이 필요한 양판래, 일본으로의 전출 명령서를 얻기 위해 댄스팀을 조직한 잭슨, 헤어진 부인을 찾기 위해 유명해지려는 강병삼, 좋아하는 춤을 맘껏 추고 싶은 샤오팡. 모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한, 살기 위한 발버둥과 같다. 생존이라는 절박함은 그들의 춤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그들의 춤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 지워졌던 전쟁이 자리한다.

     강형철 감독은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2>를 통해 영화에 음악적 박자감과 리듬감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현란한 발재간을 쫓는 트래킹 숏, 생활 속 박자감을 구현한 장면 등 마룻바닥 위 울리는 탭댄스의 타격음은 미묘하게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든다. 한번 시작된 두근거림은 영화의 결말까지 이어진다. 두근거림의 시작은 탭댄스로 인한 것이었지만 마지막의 두근거림은 그것이 아니다. 한 번에 시선을 빼앗긴 탭댄스에 대한 두근거림, 숨길 수 없는 열정의 두근거림, 이념보다 소중한 개인의 꿈이 자아낸 두근거림이었다. 이념이 자아낸 비극의 슬픔이 전하는 두근거림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절

     어떠한 집단 혹은 이념이 개인의 가치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 이념은 그것의 우위 혹은 시비를 가린다. 전쟁의 출발이다. 개인의 가치에 우위나 시비는 따질 수 없다. 다섯 명의 스윙 키즈에게는 어떠한 이념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고 본능적인 춤사위만이 담겨 있다. 이념이 낳은 갈등과 갈등이 낳은 전쟁의 결말은 늘 비극이다. 그들의 공연에서 이념이 빠지고 춤사위만 남았다면, 비극은 희극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외침과 같은 공연명이 두근거림과 함께 여운으로 남아있다. “Fuck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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