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덩구 Aug 27. 2023

아빠가 죽었다

아빠가 죽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상속포기재산심판청구서를 서울가정법원에 접수해 두었다. 청구가 인용되면 어느 서류와 법리도 아빠와 나를 엮지 않는다. 다만 고시원에서 주워온 유품과 형사가 전달해 준 소지품이 베란다에 남아있다. 봉투 두 개에 들어가는 몇 가지 낚시도구와 지갑, 아이폰이 전부다. 방어나 참치 같은 대형어종을 잡는 낚시도구이기 때문에 내가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아이폰은 잠금해제 할 방법이 없으므로 애플에 포맷을 요청한 후 판매하던지 해야 하는데 성가신 일이다. 물론 그전에 나는 지난 한 달간의 일들을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적는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업무전화라 생각하고 운전하며 태연히 전화를 받았다. 한 남성이 다짜고짜 배 00 씨 되시냐고 물었고 맞다고 하자 자기는 동대문경찰서 형사라고 했다. 내게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사망했다고 말했다. 나는 "네?"라고 말했다. 부대 앞 과속방지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다음 무슨 대화가 오갔는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말들을 했다. "사고인가요?", "주차 좀 하고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랄 만큼 침착하고 차분했다. 다만 그 이름 석자가 내 '아빠'가 맞다고 말하기가 어딘가 주저됐다. 안 본 지 20년이 된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 아빠라고 소개하자니, 어딘가 거짓말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 역시 자기를 나의 아빠라고 일컫길 민망해했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8년 전이다. 그때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는 나에게 '아빠야'라고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세요?"라고 계속 묻자, "그래"라는 엉뚱한 대답만 반복했다. 누구세요? 그래. 누구세요? 그래. 잠시 후에 나는 그가 나의 생물학적 아빠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게 아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그 일도 십 년 만의 연락이었다.


하지만 오랜 가정사를 경찰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차하고 이렇게만 말했다.

"아빠 맞고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관계가 단절됐어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3일 전에 연락 오긴 했어요. 엄마에게 저를 보고 싶다고 했다더라고요. 그것도 몇 년 만의 연락입니다"

말하다 보니 지난 주말에 아빠가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자살이 아닐까 불현듯 불안해졌다.


경찰은 마사지 업소에서 아빠가 죽었다고 했다.

"발 경락 마사지, 그런 마사지 있죠? 마사지샵에서 돌아가셨거든요?"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지금 현장인데요. 동대문 경찰서로 한번 와주셔야 할 거 같아요"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한숨을 푹푹 쉬었다. 사고는 아니라고 했다. 자살이었으면 자살로 추정된다고 말해주었을까?

"타살정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통화를 끊고 차에 잠깐 앉아있었다.


비서실에 돌아가 주무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네요"라고 말했다. "네?" 그녀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안 본 지 오래된 사람이에요. 기억도 거의 없어요"라고. 그녀는 "얼른 가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보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다른 간부가 내 말을 듣고 똑같이 놀랐다. 그는 내게 해당사실을 먼저 보고하라며 양보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본부장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동대문경찰서에서 전화받았지?"

금방 답장이 왔다.

"아니, 모르는 번호 전화 왔는데 안 받았어. 경찰서 인가보지?"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말했다.

"동대문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죽었대"

"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몇 초 뒤에 우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여기서 알아서 한다고" 그 뒤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 지휘관에게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설명하고, 경찰의 말대로면 부검 동의나 몇 가지 유족절차가 필요해 경찰서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휘관은 어서 가보라고 했다. 어렸을 때 헤어진 아버지이므로 일반적인 의미의 부친상은 아님을, 그러니까 나에게 천지가 요동할 슬픔이 분명 들이닥치진 않았다고 상기시켰다. 누구도 거기까지 묻진 않았지만, 나는 매번 설명하고 있는 게 이상했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청량리역으로 갔다. 대학생활 4년간 살던 동네였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경찰서를 찾아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근처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정말 죽은 걸까? 내가 자식일까? 나는 경찰서에 뭐 하러 가는 걸까?라는 생각이 끼어들기도 했다. 청량리의 7월은 인상 쓴 노인들과 분주한 오토바이들로 유난히 쪘다. 원래 그런 동네다.


내가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 나는 이 경찰서에 들어갈 필요가 있음을 설명해야 했다. "어.. 제 아버지가 죽었고, 저는 그의 아들인데.. 전화가 와서, 여기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요."라는 식으로. 입구를 지키시는 분은 누구를 찾아왔냐고 반복적으로 물었고, 나는 결국 아까 걸려온 전화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입구에 왔다고 말하자, "형사 3팀 배ㅁㅁ유족"이라고 설명하라 했고, 입구를 지키시는 분에게 "형사 3팀 배ㅁㅁ 유족됩니다"라고 설명하자 들여보내주었다.


하지만 형사 3팀 입구에서 다른 험상궂은 형사 분에게 붙잡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형사가 한 팔을 난간에 걸치고 말했다.

"배ㅁㅁ 유족됩니다" 내가 말했다.

그 정도로 험상궂은 형사도 유족된다는 말에 순식간에 안타까움으로 공감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아이고, 어머니랑 통화했어요. 어떡해요. 공군이시라면서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형사팀의 풍경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놀랄 만큼 흡사했다. 하얀 형광등 빛이 퀴퀴한 곳을 애써 밝혀 두었다고나 할까. 노랗거나 하얀 서류가 초록색 테이블 위로 나뒹굴었고, 무엇도 제자리라는 건 없는 듯했다. 두어 명 보이는 형사들은 좁은 가구 사이를 모서리를 피해 가며 잔걸음으로 돌아다녔고, 복사기나 테이블 같은 무언가에 손이 붙어있던 것 마냥 올려놓고 검은색 유선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엇도 어울릴 만한 위치란건 특정해 둔 공간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어디로 가서 여기 왔다고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바가지 머리를 한 내 또래 순경이 와서 나를 안내했다. 유족되시죠?라고.


그는 나에게 '조사실'이라고 쓰인 곳에 앉으라 했다. 얼굴은 투실했다. 내 고등학교 친구처럼 생긴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리숙한 기색은 없었다. 순경이라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일까? 정신 사나운 이곳에 흘러가는 듯 자기 자리를 잡은 지 몇 개월 지나 보였다. 나는 경찰을 준비한다던 고등학교 친구를 떠올렸다. 친한 애가 아니라 매치되지 않았다.


"장례는 하실 건가요?" 그가 물었다.

"네?"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장례요?"

"그걸 제가 결정하는 건가요?" 내가 말했다.


장례 결정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유족이기나 한지(죽은 아버지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 어찌 나를 경찰서로 불렀는지, 내가 여기서 누구를 만나서 어떤 조사를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간단한 의미의 자, 초, 지, 종이라는 것. 내가 받은 전화라곤 마사지샵에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형사의 전화 한 통 밖엔 없었으나 그런 답답함이 호소될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조사실 밖 대부분의 형사들은 가구 모서리 피하기 게임을 하는 듯이 요리조리 걸어 다니고 있었으니까. 경찰은 유족이 변사에 어떤 입장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장례나 부검 같은 필수적인 입장절차에 대해서도 빠르게 대답을 구하길 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조사'라는 걸 했는데, 나는 순경이 순조롭게 조사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가며 대답했다. 정확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지금 적기가 너무 귀찮다. 굳이 이따위 기억일랑 들추고 싶지않고 어제 본 오펜하이머 얘기나 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하지만 언젠가 적게되리란 사실은 도저히 어쩔 수 가 없다. 어떤 불편한 마음은 들추는 만큼 나를 고양시키기도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시아르가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