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없는 아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신기해하지만, 크게 궁금해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침, 아니 그들에겐 새벽인 5시 30분쯤 일어난다고 하면, 그때야말로 외계인의 일상이라도 목격한 듯 깜짝 놀란다.
“어렵지 않아. 전날 9시에 자면 돼.”
여덟 시간 이상 잠을 잔다는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더니, 곧 다시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9시에 잠이 와?”
이런 질문은 나를 난감하게 한다. 9시에 자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사실 나는 7시에도 잘 수 있지만, 그랬다간 새벽 4시쯤 눈이 떠질 테니까,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9시까지 기다렸다가 잠드는 거다. 요즘엔 10시쯤에 자니 더 적당해진 셈인데도 친구들은 여전히 놀리곤 한다.
“네가 무슨 신생아야?”
일찍 자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우리 가족의 전통 같은 거다. 우리 집은 언제나 아홉 시 전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학창 시절에는 여덟 시만 지나도 우리 집에 전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도 부모님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 상황을 몇 번 겪고는 아예 포기했으니까. 참고로 그 시절에 휴대폰은 흔하지 않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대학생 때도 이런 습관은 유지됐다. 물론 가끔은 밤을 새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드물었고,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더 잘 맞았으니까. 시험을 앞둔 어느 날의 새벽 3시, 이른 잠을 자고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하던 나와 밤샘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던 룸메이트가 마주치며 서로 소스라치게 놀랐던 일은 여전히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너졌다. 잦은 야근으로 잠은 항상 부족했고, 매일 아침 좀비처럼 만원 버스에 매달려 출근을 했다. 주말은 일주일치 밀린 잠을 메꾸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만성 피로. 학생 시절에는 경험한 적 없는 언제나 흐릿한 뇌. 돈을 주며 공부하는 것과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내 시간과 건강을 돈과 맞바꿨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새나라의 어른이’다. 그 누구의 강요 없이, 햇살을 알람으로 삼아 내 몸이 원하는 리듬에 맞춰 오로지 나의 의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이 너무나 좋다. 5시 반쯤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오늘 마실 커피를 고른다. 커피를 내리며, 향을 즐기고, 책을 읽는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의 두 시간은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어 나는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