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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Aug 05. 2020

나의 흑역사가 내게 알려준 것

[출간 후기] 책,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첫 회사에서 3년 10개월, 두 번째 회사에서 1년, 세 번째 회사에서 3개월. 마지막 회사에서 9개월. 애초에 9개월만 일하기로 정하고 들어간 마지막 회사를 제외하고 얘기하자면 이직을 할수록 나의 근속년수는 갈수록 짧아졌다.


처음엔 나조차도 그런 나를 비난했다. 그렇게 정신력이 약해서 어떻게 할 거냐고. 남들 다 힘들어도 참고 버티는데 넌 왜 그것조차 못하냐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일본에 이주한 뒤에도 이어진 취업 실패는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일본에서조차 취업에 실패하다니. 루저 중에 상 루저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싫었고, 과거에 내린 나의 선택들이 모두 잘못된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죽어버릴까.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집에 남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생즉필사 사즉필생
(生卽必死 死卽必生)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라던 이순신 장군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죽기로 각오하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따져보고 싶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까지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해보고 싶었다.


그날로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떠한 생각으로 대학을 선택했고, 어떠한 마음으로 첫 직장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왜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계약직을 선택하게 됐으며 그 안에서 나는 또 무엇을 깨달았는지. 계약직의 설움을 청산하고 어렵게 잡은 정규직 일자리를 왜 3개월 만에 때려치우게 됐는지.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이주해서도 좀처럼 직장을 못 구하고 결국 백수로 지내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떠한 행동을 해나가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왜 나는 글로 풀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씩 글을 썼고 드디어 올해 8월, 그것들을 엮은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나는 내 책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책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네 개의 직장을 전전하며 어떤 곳에도 적응할 수 없었던 회사 부적응자이자 3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수의 삶을 살게 된 한 사람이 쓴 생존의 기록입니다.



죽기를 각오했던 나는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를 쓰며 내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에 대한 글을 쓰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긴 터널을 지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던 나의 어두운 시기는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필요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회사원의 삶이 아닌 글도 쓰고 살림도 하고 책도 읽는 ‘글 쓰는 백수’의 삶이 더 익숙한 요즘.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와 ‘번역’이라는 또 다른 길을 개척해보고 있는 지금. 나는 내 삶이 전에 없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생각 자체가 이상한 거였다. 삶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었다.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백수 라이터’라는 스스로 만든 수식어에 걸맞은 삶을 살아냄으로써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백수 동지들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내가 가는 이 길이 모든 사람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답은 아니다. 다만 회사 다니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냐고. 백수는 늘 할 일 없이 놀고먹기만 해야 하는 거냐는 누군가의 질문들에 그렇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내가 말해줄 수 있는 하나의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2020.08.05 11:21)


글 쓰는 백수, 백수 라이터

코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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