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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Feb 09. 2024

이런 게 '임신'이구나

엄마는 나도 처음이라서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신 테스트기를 새로 사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기뻐서 그랬느냐고? 아니, 그 반대였다. 너무 무서웠다. 엄마가 되기에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렇게 보면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믿고 싶지 않았다’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약국에서 새로 사 온 임신 테스트기에서도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사라지지 않는 그 선명한 두 줄 앞에서, 나는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고, 더 이상 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결혼 후 5년 만에 갖게 된 아이였다. 그런데 별로 기쁘지 않다니. 아이를 언제 갖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저 기쁘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임신이 되자 기쁨보다는 놀람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앞섰다.


이렇게 시작부터 예상과는 달랐던 ‘임신’은 개월 수가 지날수록 점점 더 내 예상을 빗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딱히 입덧이라고 할 게 없었다. 임신 초기에 늘 갔었던 고깃집에서 항상 맛있게 먹었던 고기가 굉장히 맛없게 느껴졌던 것 빼고는 딱히 입덧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없다.


몸도 잘 붓지 않았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임신 5개월 차 때까지는 헬스장에서 웨이트 운동을 했고, 6개월 째부터 막달 전까지는 집에서 간간이 유튜브를 보며 임산부 요가 같은 걸 따라 했다.


이대로 큰 탈 없이 출산까지 하게 되겠구나, 생각했지만 이 역시 오산이었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 반 정도 앞둔 어느 날. 정기 검진 차 병원에 갔을 때였다. 얼마 전부터 아랫배가 살짝 뭉치고 가끔 아픈 느낌이 있어 의사에게 말했더니 자궁경부 길이를 재보자고 했다. 검사를 하고 내진까지 한 의사가 다소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절박 조산 기미가 있네요. 한동안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박 조산.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조산’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무리 임신과 출산에 무지한 나라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조산은 임신 20주에서 36주 사이에 태아가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조산을 할 경우 태아의 장기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각종 합병증이 생기거나 발달상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내 경우 자궁경부 길이가 비슷한 시기의 산모의 평균보다 조금 짧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놀라서 굳어있는 내게 의사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도 입원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격한 운동을 하거나 무거운 것을 드는 건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날 이후 출산일 전까지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동안 괜찮았던 다리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선배맘들이 종종 말하던 ‘임신 막달에 다리가 코끼리처럼 퉁퉁 붓는다.’는게 바로 이런 거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지잉~지잉, 울렸다.


붓기를 완화시켜 준다는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부랴부랴 사서 다음날부터 하루종일 신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더 붓는다기에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만 빼면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것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산달이 다가올수록 점점 배가 불러왔기 때문이다. 농구공 하나가 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 때문에 나는 침대에 똑바로 누울 수가 없었다. 평소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워서 자는 게 습관이었지만 그러고 자면 다음날 아침엔 허리가 너무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잤다. 그런데 그조차 깊게 자지 못했다. 소변이 자주 마려웠기 때문이다.


임신 전 어른 주먹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자궁은 임신 막달이 되면 전체 용적의 약 500배에서 최대 1,000배까지 커진다고 한다. 그렇게 커진 자궁은 방광을 압박하고 산모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주 화장실을 가게 만든다. 나는 밤에도 꼭 2~3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그렇게 아기는 내 뱃속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기와 내가 만나는 날이.


하지만 이 역시 내 예상과는 한참 달랐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나는 막연히 ‘난 순산 할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 일이 그렇게 다 마음먹은 대로 술술 풀리던가.     

 

13시간 반의 진통을 겪고 태어난 내 아이는 울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적막감만이 분만실에 맴돌았다.






수요일 연재라면서 금요일에 올리는 패기...!! ㅎㅎ

다음주 수요일 연재도 펑크내지 않도록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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