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새의 선물』은 중학생 소녀 진희가 세상의 불합리와 가족 내 갈등, 사춘기의 혼란을 겪으며 점차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각하고 성장해 가는 내용이다. 집안사람들과 동네 사람들 등 진희의 눈으로 바라보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순응적인 아이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선 치열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진희가 삶의 복잡한 감정과 상처를 다루는 심리묘사를 눈여겨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새의 선물, 꽤 긴 책이다.
그럼에도 읽기 쉬운 책이라 3일 만에 완독을 했다.
읽어가면서 작가가 묘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공감이 되고 머릿속으로 장면들이 선명하게 잘 그려진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다.
사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이 책에서 중점을 두며 읽어 내린 단어는 '상처'와 '성장'이다.
'상처'와 '성장'에 대한 책과 미디어들이 참 많고 언제 어디서나 자판기 고르듯 골라 볼 수 있는 때이지만, 1998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꽤나 영감이 되었을듯하다. 그리고 현재에도 이 책이 영향력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즐비하는 여러 책과 미디어보다 가장 날것 그대로의,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피하고 싶었던 현실에서의 감정들을 너무나도 잘 풀어 설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진희에게는 말 못 할 가정사가 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었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된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있다. 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보다 어른스러워 '보인다'. 존경받을만하고 성숙함에 끌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래 보인다'는 것뿐이다. 사실은 누구보다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하지만 가끔은 받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혼자서 무엇이든 잘하지만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큰 시너지를 낼 거라 믿는 사람이다. (내가 그렇다 ㅋ)
책을 다 읽고 나는 진희가 조숙했지만 거기서 더 이상 성장했다고 보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된 진희는 사랑을 여전히 배신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상실과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괜찮다면 그것들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진희가 더 이상 성숙해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을 꽤나 의식해서 '나는 괜찮아,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거야.'라며 자기 방어 혹은 자기 위안을 삼는 것 같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정신승리이지만, 진정한 정신승리는 그 감정들에 체념해서 '어쩔 수 없는 거야.' 하는 것보다, 아예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이 문장들만 봐도 진희가 얼마나 오버띵커(over thinker)인지 알아챌 것이다.(ㅋㅋ)
나는 이 부분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왜냐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말들은 '정신승리'에 크게 기여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방어기제'에 더 가까운 생각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희는 상실이 너무 무서운 거다.
그래서 진희와 같은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가득 안아주지를 못하고 엉덩이를 빼놓고 안아주는 사람처럼 언제든 상처받을 각오로 여러 관계 속에서 상실을 대비하며 도망칠 준비를 한다. 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삶인가!
상처받기 힘들어서, 그것을 버티지 못하는 자기를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어렸을 때 했던 생각에서 조금 더 어른이 된 내가 느끼는 요즘의 생각은, 상실은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비하려다 진정한 것들도 다 놓쳐버릴 수 있다. 어떻게든 받게 될 상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들이 있다면 감사히 또 충분히 누리고 사랑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게 더 후회가 없다.
인간은 어떤 노력을 해도 내가 받아야만 하는 일들을 받게 된다. 매 순간 상실을 대비하며 안절부절 살 수는 없다. 차라리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닥치는 어려움이 훨씬 낫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즐거웠다는 것일 테니까.
'present'는 지금, 현재라는 말도 있지만 '선물'이라는 말도 있다는 것을 들어 봤을 것이다. 현재는 선물이기 때문에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감사하라는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의 모토는 '코미디언처럼 살기'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살지 말자는 의미에서이다.
코미디언들은 자기에게 닥친 시련과 어려움을 재미있게 '웃긴 썰'로 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어려움과 감정은 더 이상 무겁고 힘든 일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는 똑같은 상황이 와도 피식 웃게 되고 또다시 사람들에게 그 썰을 풀 것이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이 시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오래된 기억(늙은 앵무새)이 희망의 조각(해바라기 씨앗)을 다시 건넸을 때,
그 희망이 어린 시절의 아픔이나 상처(감옥)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팔지꼰'이라는 말이 있다. 별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이 시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 과거는 과거로 묻어야지. 언제까지 붙들고 들어가 있을래?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려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라고 풀어주는데 왜 자꾸 안 가고 감옥에 계속 있으려 하는 거냐고! 이제 좀 나와!'
제성이 엄마처럼 지옥 어딘가에 계속 머물러 있지 말고,
한 발만 내디뎌 버스에 올라타서 죽어라 버티다 보면 또 행복이 찾아온다.
그때는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할 줄 아는
진짜 성숙해진 자신을 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