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에 정해야 할 사랑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몇 번이고 다시 정해야 한다.
읽으면서 정말 정신에 해롭다고 느낀 책은 처음이다.
너무나 toxic 하고 괴로웠다. 공감이 되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펼쳐지지 않은 상황일 뿐 막상 저 상황이 된다면 나도 저 관계를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해를 해보려 했다.
'그래, 어쩌면 내 인생에 같은 시기에 아주 좋은 두 사람을 만났을 때 둘 다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불륜과 바람이라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사람 사이에 궁극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두둔하고 옹호하게 되는 작은 발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의 나라면 아무리 좋은 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사랑의 속성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가 위기의 시대라고 일컫는 이유는,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결핍을 책임지지 못할 만한 것들로 채우려는 것.
일시적인 도파민, 영원하지 않을 순간의 쾌락을 쫓아 책임을 회피하고 당장의 잘못된 안정을 추구하는 것.
그 끝에는 공허와 잘못된 선택의 반복, 결국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결말이 발생한다는 것을 믿는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말한다.
내게 맞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어렵게 느끼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확신을 주고 행복과 안정을 주고 더 큰 시너지를 내게 만든다.
다만 환경과 상황이 사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지만, 환경과 상황이 아닌 상대와 나로부터 오는 삐그덕거림과 어려움이라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관점에서 나는, '관계는 깨진 유리잔과 같아서 붙이려고 해도 잘 붙을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다음에는 그것에 의문이 들었고, 요즘은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는 딱딱하고 얇은 유형의 유리잔이 아닌데 왜 깨지고, 다시 붙이기도 어렵다고 하는 걸까?"
관계는 유리잔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해 정말 주의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과 군중심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진리인 양 납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더 많은 기회와 독립성과 개성을 방해한다.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완전히 그것이 나의 삶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까.
한계를 두지 않길 바란다. 다만 그것이 도덕과 윤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말이다.
그래서 사실 나의 이런 생각과 말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깨달음이 생긴다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몇 번이고 다시 정해야 한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마땅히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이 위기의 시대에 내가 정말로 끝까지 지켜내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그 대상은 '나'를 포함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를 지키게 도와주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아직도 누군지 모르게 하는 혹은 내가 나답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관계들에 쌓여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고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기꺼이 나를 잃게 만드는 그 관계들로부터 멀어질 것을 권면하고 싶다. 정말 내 사람이라면 끝까지 내 옆에 남아 있을 테니.
마땅히 책임지기를 좋아하고 용서하며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