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독일인의 사랑》은 한 남성이 사랑을 통해 삶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사랑이 어떻게 인간과 신, 그리고 자연을 잇는 깊은 경험이 되는지를 서정적으로 보여준다.
뒤에 반전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해 보았다.
책의 제목은 <독일인의 사랑>이지만, 내용을 정독한 후에 사랑에 대한 의미와 인간의 최초적,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도 고결한 사랑은 독일을 넘어선 모든 인류의 사랑에 대한 고뇌와 열망을 나타내주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책을 읽고 나서 북모임의 토론 주제이기도 했던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난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대부분의 문제와 어려움의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사랑에 대해 단호하고 냉소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항상 인간 사이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무력해지는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랑’이라는 것이, 큰 힘과 기적이라고 부르는 그 ‘사랑’이 죽음 앞에서 어떤 힘이 있을까.
그 어느 곳에서든 영원한 것으로 현현되는 것은, 구속된 운문(표)에 담긴 구속할 수 없는 정신이니
참된 시인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것을 운율이라는 구속된 형식에 담아 표현할 줄 알 듯이, 인간이라면 사회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감정의 자유를 지킬 줄 알아야겠지요(p.54-55)
헛된 슬픔에 사로잡혀 하루라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네. 자네가 아는 인간들을 도와주게나. 그들을 사랑하면서, 한때 이 세상에서 마리아 같은 성품의 인간을 만나 알고 지냈으며 사랑했던 사실을 신에게 감사하게. 또 그녀를 잃은 것까지도.
자연의 품에 안겨 저 바깥에 인간들이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외톨이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기억의 묘지에서는 소생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죽어버린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엄청난 사랑의 힘이 마음속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도 그윽하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존재를 향해 흘러간다. 그러면 수백만을 향한 사랑이 이 사랑 안으로―나의 수호천사를 향한 이 사랑 안으로 수렴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은 이 끝도 없는 사랑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앞에서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p.155-156)
책을 읽고 ’ 영원한 사랑이 있다 ‘는 말보다, ‘사랑은 영원히 흐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무력해지고 모든 것이 무가치해지는 경험. 그런 어마어마한 경험을 해본 적은 없으나 이별이란 건 어쩌면 다 조금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 나 역시도 그러한 무력감에 대해 조금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픔을 딛고 겨우 일어났을 때, 눈앞에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할 소중한 대상들과 중요한 사실들이 있었다.
그전에 나는 내 아픔을 완전히 치유하기까지 누워만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내 문제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일정 부분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상처는 해결되지 않고 흉터처럼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대상은 떠났지만 그 사이에 내게 생긴 사랑의 힘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배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단 상대가 내게 준 사랑뿐 아니라 내가 발휘한 사랑들에, 그 꾸준함이 만든 탄력과 근육, 에너지, 체력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더 많은 것을 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내 곁에 잠시 살아주었던,
각자 내게 그들이 가진 고유한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어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빠짐없이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끝나버린 사랑이라고, 끝나버린 관계라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속에서 배운 사랑과 받은 사랑은 결코 어디 가지 않고 내게 머물러 흘러나가게 만든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많은 사람들을,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준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니길 바란다.
작품 해설자는 마지막에 이 책이 ‘황금 속에 박힌 진주보다 풀줄기 위에 맺힌 이슬방울의 아름다움’을 아는 마음을 심어주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나도 그런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고 싶다.
세상이 열광하는 아름다움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배우고 발견하는 사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