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가진 당신을 위한 ‘기억력 안내’ 1: 망각의 진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기껏 책을 읽어놓고 내용을 까먹는 것은 기본이고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매일 헷갈린다. ‘밥 먹듯 까먹는다’라고 하기엔 밥 먹는 횟수보다 까먹는 일이 훨씬 많다. 심지어 웬 낯선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데 알고보니 몇 개월 동안 여러 번 만난 친한 사람이었던 일도 있다. 이름을 까먹고 나누었던 대화도 까먹고 해야 할 일상적인 일들도 까먹는다.
특히 ADHD를 진단받은 사람들, ADHD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아는 것이 힘’인 정보화 시대에 디테일을 까먹는 것은 커다란 디메릿으로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떠올리기는커녕 망각의 저편에 묻어버리는 슬픈 일도 비일비재하다.
ADHD라고 특별히 기억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계속 까먹고,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망각할까? 이번 글은 ADHD를 가진 당신이 항상 깜박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ADHD인들이 경험한 것들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경험을 부정하려고 한다. 당신은 사실 보고 듣고 경험한 적이 없다.
ADHD는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일명 DSM은 ADHD의 증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① 주의력 결핍 (Inattention)
② 과잉행동-충동성 (Hyperactivity-Impulsivity)
이 중 ①주의력 결핍 (Inattention)에는 다음과 같은 증상이 포함되어 있다.
‘Often loses things necessary for tasks and activities’
일이나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버림.
‘Is often forgetful in daily activities.’
일상활동을 자주 잊어버림.
그런데 우리가 ‘기억’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지점은 다른 증상들이다.
‘Often fails to give close attention to details or makes careless mistakes in schoolwork, at work, or with other activities.’
학교나 직장, 다른 활동에서 주의집중에 실패하거나 부주의한 실수를 자주 일으킴.
'Often has trouble holding attention on tasks or play activities.’
작업이나 활동에 있어 집중을 유지하는 데에 빈번히 문제가 있음.
‘Often does not seem to listen when spoken to directly.’
직접적으로 듣는 상황에서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음.
‘Is often easily distracted.’
쉽게 부주의해짐.
이제 당신이 사실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되는가? 마주앉은 사람과 대화하면서도 당신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의 머릿속은 언제나 시끄럽다. 누군가는 이를 ‘잡생각’이나 ‘쓸데없는 생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집중하지 않기를 택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주의력 부족이 우리의 집중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도 온전히 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는 ‘다르게 경험’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엇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입력과 저장의 과정이 필요하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어떠한 문서 파일을 작성하고,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는 세 가지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이다.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뇌에 입력하고, 뇌는 이러한 자극을 정리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이를 떠올리는 것까지가 기억의 과정이다.
그런데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입력’의 과정 자체가 조금 다르다. 외부에서 특정 자극이 들어올 때도 머릿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래서 외부의 자극을 특정 체계를 통해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입력’의 과정이 약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정보가 제대로 저장되지 않고, 정보가 저장되지 않으니 당연히 떠올릴 수도 없다.
고의로 무엇인가를 까먹기로 했다면 태도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나쁜 기억을 잊기로 했다면 잘한 일이다. 하지만 소중한 추억들과 필요한 일상을 까먹는다면 이만한 슬픔이 또 없다. 더욱이 자주 깜박하고 잊어버리는 자신을 ‘부주의함, 산만함, 태도불량, 멍청함’과 같은 말로 비난한다면, 안 그래도 억울한 자신에게 채찍을 다시 휘갈기는 잔인무도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자, 그래도 이건 기억하자. 당신은 ‘까먹은’ 게 아니다. 사실 당신은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다. 이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당신을 위한 짧은 ‘기억 특강’을 써보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 글 ‘ADHD를 가진 당신을 위한 기억력 안내 2’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