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첫차를 타면,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나의 인생에 대하여 반성하게 된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은 승강장의 스크린에 출발 예고 문자가 흐르고 있다. ‘더 이상 동영상을 재생할 것이 없습니다.’ 대기 시간을 끝내고 열차를 가동한다는 신호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일까? 그 말이 내게 비수로 꽂힌다. 내 인생 또한 재생할 아무것도 없이 흘러가 버릴 것일까? 아침부터 참 지독한 욕을 듣게 되는 것이다.
차 안의 사람들은 대개 졸고 있는데, 어젯밤 잠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졸고 있는 듯하다. 오늘의 도약을 위한 잠시의 웅크림이라 할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졸고 있다니. 도대체 이 잠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전투태세인가? 그렇다면, 오른쪽에서 4번째 자리에서 꾸벅거리는 저 젊은이의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잠시의 흐트러진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무쇠로 만든 바퀴가 또 다른 쇠인 레일에 부딪히는 소리는 찢어질 듯 굉음이지만 모두 잘 참아낸다. 지치고 찌든 소리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려니 들을만한 것이고, 요란하나 곧 이어질 속도에 묻혀 무디어질 것이니 소란 따위는 참을만하다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차가 내는 속도가 아닌가. 이제사 각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니 오늘 이루어질 전투가 꽤 장엄할 조짐이다.
사람들은 거의 눈을 감고 있지만 제가 내릴 역에서 정확히 내리고, 그 자리에는 또 새로운 사람이 탄다. 열차 또한 그 첫 교체를 시작으로 비우고 채우는 제 본연의 임무를 시작한다. 8편성 4호 차의 네 번째에 위치한 저 좌석은 오늘도 몇 명의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보낼까?
환승역에서는 정차 시간이 길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둘씩 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차는 붐비기 시작한다. 사람이 채워지자 차는 또 떠난다. 시간에 맞추어 사람이 채워지는지 사람이 채워지자 차가 떠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시간은 정확하니 모두가 질서란 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어느 사람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지만 다행이다. 내가 저들 개별의 노동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듯이, 저들 또한 내 삶의 태도가 치열하지 못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런 와중에 차와 사람들은 제각각의 속도에 빨려 들어간다. 이젠 나도 세간의 욕일랑 무시하고 의뭉을 떨면서 오늘을 다시 시작하자.
마침내 차가 터널에서 나와 지상으로 오른다. 플렛폼 구멍구멍 올라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어느듯, 아침 해가 훌쩍 차올랐다나 보다. 나를 내려준 열차가 저 너머를 향하여 또 달려간다. 괜히 허리를 굽혀 신발끈을 다시 조였다.
그래! 단언컨대, 도시의 삶은 여기로부터다. 첫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