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란 매우 합리적인 장치로 보이지만 실은 그릇된 위장에 불과하다. 특히 밥벌이 혹은 입신, 출세의 문제로 들어가면 더욱 교묘해져서, 조직 뒤에 숨은 사람들은 술수와 교활을 서슴치 않고서도 곧잘 그 책임을 조직에 전가시키는 데에 골몰한다. 이성이 위선의 단계로 돌입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조직이라는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 특히 내 삶을 불편하게 하였다면, 그것은 건축을 직업으로 선택하였던 것과 문학을 좋아한 탓이다. 둘 다 조직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은 매우 특별한 작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말하여, 이 세계로 발을 디디는 수순인 이른바 협회라는 것들이 내 작업과 어울리지 않음을 벌써 눈치 챈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조직화 됨으로서 잃는 것들에 대하여 신경질적으로 민감하였던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러한 조직을 등한시 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더러, 하물며 조직의 생각에 딴지를 걸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새 그러한 태도가 세상을 대한 내 입장과 성향으로 굳어진 지도 모른다.
어젯밤에 나는 후배 건축가와 조직의 그릇됨에 대하여 말을 나누었다. 결론적으로 내 입장은 조직에 휩쓸리지 말자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여 삶이 그리 불편할까?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떠올린 단어가 조직(組織)과 직조(織組)란 말이었다. 같은 뜻을 가진 낱개 말의 조합이 앞뒤 순서를 바꾸니 그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내게 조직이란 말은 거부감으로 다가오지만, 직조란 말은 한없이 깊은 의미로 오는 것이다.
좋은 건축을 만드는 일이란 올올이 실을 엮어내는 작업과 무엇이 다를까? 하물며 삶이라는 더 큰 명제 앞에서는.... 건축 앞에 날뛰는 조직의 그릇됨을 성토한 오늘, 우리들의 짧은 대화마저 건축이란 여정에 한 올의 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별이 총총한 야밤에 나는 허둥지둥 직조의 야무진 성과를 사진 찍고, 조잡한 글과 함께 조직의 허망을 성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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