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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공작소 Oct 03. 2024

[작심(作心)3일] 31편. '이정표'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나를 도와주는 이정표, 나도 누군가의 이정표

전하영    

 

낯선 길을 헤매듯 가다 낯익은 이정표를 만나면 헤어진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정표는 그런 것이다. 늘 그 자리에서 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잘 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평소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하다 보면 수많은 이정표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무심히 지나가거나 간혹 너무 많은 이정표로 인해 길을 헷갈려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정표를 무시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소중함이 익숙해지면 무뎌지는 이치다.     


이정표는 길에만 있지 않다.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아주 유용한 이정표를 사용한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멍청하다. 양갈래길에서 단 1분이라 빠르게 나오면 그 길을 안내한다. 곧이곧대로 믿고 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외국 여행길에는 구글맵을 사용한다. 구글맵도 가끔씩 어려운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이럴 때 그 길을 가 본 경험이 있는 길동무가 있다면 무척이나 안심이 된다. 그 길동무는 이정표와 같은 소중한 존재다.      


길을 가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같은 인생의 항로에서 이정표를 만나면 꽃길이 열릴 것만 같다. 그런 이정표가 주변에 늘려 있다. 책, 인터넷, 저명인사의 강연 등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헷갈린다. 내가 잘살고 있는지 참고는 될 뿐 확인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이정표가 인생의 길동무다. 때론 격려하고 때론 질타하면서도 함께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동무가 있다면 조금 돌아가면 어떠하고 가다가 넘어지면 어떠하랴. 같이 웃고 울어주며 보폭을 맞춰주는 그대들이 있는데^^      


이정표는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도록 도와준다. 인생의 이정표는 꿈의 방향과 꿈의 도달 시점을 예측하도록 도와준다. 그 이정표가 나의 길동무라면 두려움마저 없애준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늘 느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이정표 없는 길을 헤매고 싶기도 하다. 위험을 감수하면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헤맨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나의 길동무처럼 나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내 삶의 이정표     

한성근     

  

이정표는 거리와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다. 인생의 이정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허락된 시간만큼의 거리와 원하는 삶의 방향을 말하는 것인가 싶다. 이 인생의 거리와 방향은 누구인가의 것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을 가늠하기도 한다. 또는 전혀 새로운 삶의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과거의 삶의 궤적을 생각해 보니 사회가 정해놓은 것들을 배우고 따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것이 내 인생일까?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기 위한 이정표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정표대로 사는 삶을 생각하니 발달심리학이 떠오른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학령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구분하고,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도덕적, 심리 사회적 발달을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각 단계에 맞는 과업이 있고, 이를 완수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 과업의 달성 정도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자아개념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는 다양한 노력이 생성된다. 기존의 이론에 맞추면 그럴듯하다. 이런 이정표들을 통해 한 번뿐인 인생을 잘살아 볼 방법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발달단계와 달리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 방향을 생각하면 좀 더 복잡해진다. 다른 사람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꿈과 재능을 소재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무엇이 되기로 한다. 이를 위한 역량과 역할, 가치와 윤리, 성과와 보람을 느낀다.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다양한 이정표를 살피며 나만의 방향성을, 시간을 갖게 되는 듯하다.      


내 삶의 이정표를 만드는 방법으로 ‘꿈넘어꿈’을 이야기한다. 무엇이 되는 것과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탐색하고 자신만의 이정표를 만든다. 이를 이루는 전략으로 습관과 시간 계획을 잡는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를 글로 적는다. 나름의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매일매일의 습관을 만들어 실천하면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비전이라고 한다. 요즘 자주 내 강의에서 사용하는 콘텐츠다.      


우리의 삶은 이제 어느 때보다 긴 노년의 삶을 살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8단계의 발달단계에서 7단계까지의 기간보다 더 긴 노년기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평생교육과 학습은 이를 해결할 도구다. 자신의 재능, 경험, 지식, 지혜를 재 구조화하여 배움과 학습, 실천과 일거리를 찾아 긴 노년기의 삶을 평생현역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본다. 그래서 나만의 삶의 이정표를 만든다. 남은 인생이 기대된다. 




목적지가 있는가?     

 권창숙


이정표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어... 나 이정표에 대해서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썼던 글을 찾아보았다. 있다. 이정표. 어떤 주제였길래 나는 이정표를 가지고 와서 글을 썼을까? 궁금해서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 찾아보기를 멈추려 한다. 주제까지 찾아보고 나면 나의 사고가 틀에 갇혀버릴 것 같아서이다. 피부 표피 세포는 수명이 28일이고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이라고 한다. 분열을 하든, 성장을 하든 우리 몸은 1년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지’라는 생각에 갇혀 늘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결론을 내리고 같은 행동을 한다면 성장 가능성을 믿는 학습과 교육을 지원하는 사람으로서 일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매일 나의 성장과 변화를 바라며 나 자신과 싸우지만 나의 성장과 변화는 더디기만 하니 답답하다. 그러나 나는 가능성을 믿는다.     


나처럼 이렇게 먼 길을 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이정표이다.

‘너는 어디로 가기 위해 여기에 있는가?’

‘너는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가?’

가고자 하는 곳이 있다면 판단의 기준이 마련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들이 나의 생각처럼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도량법이 나온 것도 너와 내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되는 기준을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 멀리 정선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내비게이션을 쳐다보며 어떻게 가면 가장 짧게, 운전을 덜 힘들게 하고 다녀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길을 정하고 나섰지만, 가다 보니 도로 상황에 따라 시간이 늘어난다. 때에 따라 내비게이션은 다른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전체 길을 모르니 나에게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나는 단지 제시된 길을 선택하고 달리며 가끔 ‘아, 이 길로 오는 게 아니었네..’라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전혀 모르는 길을 내비게이션 덕에 다녀왔다.


이정표는 그런 것인 것 같다.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지는 나에게 오롯이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잠시 쉬었다 가도, 조금 멀리 돌아가도, 샛길로 빠져도 목적지가 분명히 있다면 이정표를 보면서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면 속도위반이나 신호위반으로 범칙금을 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걸릴 수 있다는 것은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로 가도 괜찮아     

최정연


요즘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행, 오디션,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대세 콘텐츠다. 이를 증명하듯 공중파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내 기억 속 음식과 관련한 가장 고전적인 프로그램은 요리 명인이 나와 요리의 비결과 조리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EBS 요리 교실이었는데, 재미보다는 정보전달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부터 음식은 단순히 요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게임의 벌칙이나 보상에 쓰이는 재미난 소품이 되었다. 인터넷과 SNS 확산에 즈음해서는 맛집 탐방으로 여행과 찰떡궁합을 이루기도 하고, 혼밥족의 밥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유명 먹방러의 탄생에도 일조했다. 자극적인 게임과 천편일률적인 맛집 소개에 시청자들이 질릴 때 즈음, 그저 시골에서 삼시 세끼를 자급자족하는 일에 하루를 오롯이 공들이는 연예인들을 통해 느리지만 여유로운 일상을 대리만족시켜 주고, 전문 레스토랑 못지않은 맛과 서비스로 이벤트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요리 전문가도 아닌 연예인이 거꾸로 유명 셰프들에게 호통치며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간단한 조리법과 신메뉴 개발 실력으로 본캐 보다 부캐가 더 유명한 이들도 등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유는 결국 시청률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함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모로는 비껴서, 옆쪽으로, 가장자리로, 대각선으로 등을 뜻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목적지로 가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 길이 딱 한 가지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같은 이정표를 보아도 누구나 같은 길로 가지는 않으니 말이다(가끔은 친절함으로 무장한 내비게이션마저도 나에게 길 안내를 포기할 때도 있다 ^^;;).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이정표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주긴 하지만 오히려 ‘모로’를 방해하는 지침이 될 수도 있으니 얽매일 필요는 없다.     


최근에는 오디션과 요리를 결합한 프로그램이 인기몰이 중인데, 흑과 백의 요리계급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으로 논란이 되고 있긴 하지만 여러모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가수나 배우 선발의 전유물 같았던 오디션이 요리와도 꽤 잘 어울린다는 점과 단계마다 주어지는 미션에 이정표(가이드)는 있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이 의외로 많고 그 방식이 오히려 높게 평가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1등에 눈이 멀어 얄밉다고 욕하고, 너무 잘나서 정이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이정표 해석이 무조건 틀렸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모로야말로 우리 삶에 여러모로 유용한 진짜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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