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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공작소 Jul 03. 2022

[작심(作心)3일] 4편. '꿈'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새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나의 꿈 넘어 꿈

한성근     


내가 꿈꾸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생학습을 통해 자아실현의 삶을 사는 세상이다. 나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학습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동지들과 평생학습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2006년 나는 평생학습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평생교육사협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평생교육실천협의회 동지들과 평생학습축제, 평생학습마을, 학습동아리, 네트워크 등 평생학습도시를 구현하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기간이 평생교육사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기간이 되었고, 가장 의미 있는 사실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꿈 넘어 꿈을 만나게 된다.      


2014년 경기도 시흥시의 평생교육사가 되어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이끄는 평생학습을 위해 일하게 된다. 평생학습마을과 학습동아리 사업을 통해 도시 활성화의 전략으로서 학습공동체의 역할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의 꿈 넘어 꿈을 이루는 동지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평생학습은 누구에게나 배움을 통한 자신의 발견, 학습을 통한 성장, 실천을 통한 자아실현 등의 기회를 줄 수 있다. 평생학습사회는 이 기회를 이루는 도구다. 학습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전략이 된다.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나의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다. 나는 향후 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18년 (사)한국평생교육사협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꿈을 실현하는 것은 항상 현실이라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함께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라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협회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협회가 운영될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 되었고, 협회에 기대하는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향후 좀 더 지혜롭게 우리 사회 전문가 그룹의 역할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보고 싶다.       


2021년부터 평생학습공작소라는 1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평생학습공작소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협회의 일을 뒤로하게 한 이후로 평생교육현장과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일하고 있다. 또한 지역을 기반으로 평생교육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지금은 부산에서 딩굴딩굴공작소 식구들과 다양한 학습을 하며 육체적 정신적 근육을 키우는 재미난 일들을 도모하고 있다. 다채로운 상상을 하며 내가 꿈꾸는 세상을 실현할 방법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좋은 꿈은 시대를 관통해 더 많은 이들의 꿈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이 다른 평생교육현장 사람들에게 읽힌다면 나의 꿈이 당신들의 꿈과 통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아빠 어디 가?”

권창숙     


아침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러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온다. 아빠다. 발을 멈추고 어딜 그리 가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병원에 가신단다.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이다. 나는 손을 흔들고는 가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빠도 걸음이 매우 빠른 분이시라 팔순 답지 않은(?) 속도로 가던 길을 가셨다. 올해 팔순이신 아빠는 작년에 하시던 일을 접으셨다. 몇 년 전 손가락이 골절되셨는데 수술을 하지 않으셔서 손가락이 휜 채로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아빠의 꿈이 뭔지 들어본 적도 물어본 적도 없다. 어릴 때 고아가 되어 할머니 손에 자라 6.25 때 남한으로 내려온 아빠의 고생담은 엄청 많이 들었으나 아빠의 꿈을 들은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친척 집에서 땔감을 지어 나르며 더부살이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던 터라 도시락은 생각지도 못하고 늘 밥을 굶던 아빠가, 운동회 때 반 대표로 달리기를 나가 1등을 했더니 온 친구들이 기뻐하며 싸온 음식을 나누어줘서 먹었다던 아빠는 꿈을 꾸긴 했을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냐”라고 물었다. 꿈이 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그때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했다. 물론 그 꿈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사라졌다. 그 당시엔 꿈이 아니라 장래희망(직업)을 물었다. 그렇게 성장했더니 어느 순간 꿈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우리의 주변에 살포시 자리 잡았다. 잠잘 때 꾸는 것만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꿈이란 단어는 참 모호하고, 뜬 구름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그러면서도 이쁜 색일 것 같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도 꿈꾸는 건 괜찮을 것 같다고 나 스스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꿈을 꾸고 꿈은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힘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자기의 공간을 만들려 하며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내면에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있다.


내 꿈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나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나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나를 통해 그들이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면의 힘을 키우고, 나의 가치를 찾으려 애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본다.

‘함께 꿈을 꾸자. 각자의 꿈을 꾸자. 그리고 함께 살아가자.’




딩굴딩굴 굴러...

전하영     


오래전 초등학생 대상으로 꿈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물음에 많은 학생들이 특정 대상 또는 특정 직업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저는 뒹굴뒹굴 굴러 세상 한 바퀴 도는 게 제 꿈이에요.”라고 대답을 했고 나는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힘차게 박수를 쳤다.     


나는 어릴 적에 저런 꿈을 꾼 적이 있었나? 나 또한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직업을 꿈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물론 직업인으로서의 꿈속에서 업(業)의 가치를 담아낼 수도 있지만, 꿈을 이야기할 때 직(織)보다 업(業)의 가치를 담은 말은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꾸었던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가 어느 순간 ‘교육’ 그 자체가 좋아 교육학과를 선택했고 ‘평생교육’에 빠져 평생교육사가 된 나는 직(職)으로서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업(業)으로서의 꿈은 이룬 것이다. 어쩌면 행운과 같은 삶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뒹굴뒹굴 굴러...”라는 꿈은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주었고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한 단어가 되었다.     


그 후 몇 해 흐른 뒤 우리들만의 작당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공간의 이름을 별다른 고민 없이 ‘딩굴딩굴공작소’라 지었다. 마음 편하게 쉬면서 재미나게 작당을 하는 공간인데 표준어 ‘뒹굴뒹굴’은 발음도 어렵고 느낌도 무거운 듯해 비표준어인 ‘딩굴딩굴’을 썼다. 왠지 좀 더 가볍고 발랄하며 통통 튀는 느낌이 참 좋다.     


한 아이의 꿈 이야기가 나의 소중한 공간에 컨셉이 되었고 이 공간에 모인 이들과 꿈을 이야기하고 꿈을 그리며 꿈을 이뤄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어가고 있다.     


꿈은

꿈을 꾸는 사람의 것이고, 꿈을 그리는 사람의 것이며, 꿈을 이루는 사람의 것이지만, 누군가의 꿈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되기도 하니, 더 많이 더 자주 꿈을 꾸며 살아야겠다.




몽상(夢想)을 즐기다

최정연     


몸이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날이면 자면서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마구잡이로 벌어지는데, 주로 내 마음과는 달리 속수무책으로 사건이 전개되곤 한다. 개연성 없어 보이는 일들이 묘하게 얽혀서 돌아가는 속에서 나는 주인공일 때도, 그저 구경하는 사람인 적도 있다. 또, 어떤 날은 신기하게도 이 모든 사건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전지적 작가가 되어 내 꿈을 연출하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은 꿈을 꾸면서도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이건 꿈이니까 괜찮아’ 정도의 생각이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는 날은 머릿속이 아주 바쁘다. 사람이 자면서 꾸는 꿈은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던 무언가가 이성과 인식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표출된다는 점에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꿈의 모든 내용을 내가 지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것은 꿈이고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나는 상상을 초월하여 용감해질 수 있다. 꿈이라 책임질 일이 없다는 생각을 인식하는 순간, 내 마음대로 인물도 끌어오고 시간도 뒤죽박죽 뒤섞으며 막장드라마도 울고 갈 개꿈을 더 신나게 펼친다.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웃기지도 않은 드라마가 끝나면 잠에서 덜 깬 몽롱함으로 머쓱함을 덮는다.      

꿈(夢)과 생각(想)이 만나면 몽상(夢想)이 된다. 꿈속의 생각이나 현실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몽상이라 부르며 비웃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헛된 상상이 현실을 만드는 시대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현실에 더 집중하고 누군가는 몽상과 현실을 잇는 꿈을 꾼다. ‘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어릴 적 수많은 꿈, 살면서 이뤄낸 꿈,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 아직도 헤매는 꿈. 그 무엇이 되었든 꿈은 생각과 만나 몽상이 될 때 비로소 이어진다. 때문에, 자신이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꿈꾸는 몽상가들이 부럽고 신기하다. 현실에서는 자꾸만 위축되던 당신의 상상에 날개를 달고 싶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꿈꾸면서 요리조리 생각을 해보자. 비현실적이면 어떻고, 막장드라마면 어떤가. 오롯이 당신의 몽상이니 마음껏 즐기시기를 권한다.      




난 꿈을 이룬 것일까?

김동희


"동희야~ 너 무용하니?"

"아니요"

"너 꼭 무용하는 사람처럼 생겼다~"

"......"


중학교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과의 첫 대화 내용이다.


발레리나가 되고픈 강렬한 꿈이 있었지만

그 시절의 우리 집에서는

얼토당토않는 이야기였기에 더 이상 부모님께

떼쓰지도 못하고 그냥 스스로 꿈을 포기하고

무용에 대한 생각을 아예 잊고 살았었는데,

그때 중학교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무용하는 사람으로 보아주신 것은

정말

천지가 개벽하는 듯

크나큰 사건이었다!


그때 난 대단한 운명적인 힘을 느꼈었다.

'그래 난 무용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어'

이렇게 생각하고

당장은 꿈을 이룰 방법은 없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말자는 각오를 하게 되었고

그  꿈이 실현되는 그날을 꿈꾸며 다른 것들도 열심히 하면서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탓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언니의 경제적 지원으로

꿈에 그리던 발레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했었다.

토-슈즈 속 발가락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발톱이 빠지고, 그런 상황들이 너무나 신이 났었다.

그것들은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므로~


그렇게 열심히 하여

대학에서 발레 전공을 하며

꿈에 한층 더 가까이 가는 듯했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집안에서 예술의 길을 가겠다고 꿈꾸는 건

정말 무모한 짓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 도움 없이 대학을 다녀야 했기에

학비 마련하랴, 공연 의상비 마련하랴,

너무도 힘겨웠던 대학시절이었다.

대학시절의 나의 시간들은 학업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공연 연습으로 꽉 차있었다.


학부시절에  즐길 그 무엇도 마음껏 즐기지 못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래도

행복했었다

그 모든 힘겨움은 내 꿈을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발레는 계속 레슨을 받아야 하고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한데,  학비 마련하느라 레슨비 마련까지는 못해서

연습량의 차이가 결국은

나를 점점 꿈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결국!

난 꿈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선택했다.

그것은 나의 꿈을 너무나 싫어하셨던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는 길이기도 했었다.


수많은 사연들을 품은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지금의 시간에

나는

발레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발레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꿈은 산산이 부서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발레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이여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일을 하는 나는

꿈 너머의 또 다른 모양의 꿈을 이룬 듯하다.


그렇다!

꿈의 형태가 변했을 뿐

춤을 추거나, 춤을 추게 하며

진실된 영혼의 몸짓은 계속되므로

난 꿈을 이룬 것이다.


그 험난한 여정을 잘 버텨준

동희야 수고했어!

너의 열정에 감사해!!!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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