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전하영
자존심을 세우다
자존심은 남과 상관없다. 스스로(自) 자신의 가치와 품위를 높이(尊)는 마음이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나 스스로가 당당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가 당당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세상을 나아가게 되면 남들도 그 품위를 느끼게 되며 이것이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심을 말로만 세우려 하거나 상대방을 짓누르며 세우려 하기에 그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자존심 세운 것으로 착각하는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비록 말이 마음의 알갱이일지라도 말뿐이라면 그 마음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자 허영이 된다.
자존심은 오롯이 나의 마음속에서 세울 때 그 빛을 발하게 된다. 평생교육사로서 나의 자존심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배움과 실천으로 세우고 또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끔씩은 무뎌지기도 하지만 20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왔기에 남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듯하다.
자존심을 지키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시간에 비례하여 단단함이 견고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시간이 쌓일수록 풍랑을 만나 흔들리는 횟수가 늘어나는 듯하다. 세우고 오를 때는 미처 몰랐다. 그 위에서 서서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로운 변화와 예기치 않은 도전들에 직면하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올곧게 서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강의와 컨설팅,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평생교육사로서 누군가에게는 모범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기도 하며 누군가의 길이 되기도 하는 삶의 무게는 더욱더 무거워져 간다. 때로는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움츠려드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잘났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사로서 나 스스로 정한 나의 삶에 대한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나의 삶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비교되기 싫은 나만의 길이고 싶다. 이 정도의 자존심은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더 단단히 세우고 더 견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다.
권창숙
자존심은 버려야 하는 것이고 자존감은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자존심과 자존감은 전혀 별개의 것일까? 상관이 전혀 없을까? 자존심과 자존감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인 것이 깔려 있다. 존중, 인정, 나의 가치, 나의 능력 등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늘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를 들으며 큰다. 태어나서 웃었더니 앞에 있는 어른이 잘 웃는다며 나를 칭찬해 준다. 게다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화답한다. 어렵게 넘어지길 반복하며 걸었더니 잘 걷는다며 칭찬해 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서 말로 인정받았고, 지지도 받으며, 칭찬과 격려도 받지만, 실망하거나 기대감이 무너진 표정들과 한숨들, 그리고 격렬한 질타도 받으며 나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자기 스스로 평가를 하게 된다. 내가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에 따라 인정도 달라지고 존중의 마음도 오르락내리락하며 롤러코스트를 탄다.
그렇다면 자존심과 자존감은 뭐가 다른 걸까? 자존심은 상대가 나를 존중하고 인정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정도만큼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기대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자존심이 상했다’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 나의 자존심을 스스로 지켜주는 것이다. 이것은 자존감이라 보는 것이 더 맞을 수 있겠으나 이 글에서는 자존심으로 연결해 보기로 한다. 자존심은 내가 나를 어느 정도로 인정하는가가 주요한 기준점이 된다. 따라서 나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업의 현장에서라면 이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정도에 맞추어 보아야 한다. 또한 자아상이 과도하게 팽창되어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모든 이들이 타인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결국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타인의 행동, 말에 의해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상대를 평가하고,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갑을관계를 생각하고, 우위관계를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표현한다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무례한 태도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어.”라고 이야기해도 된다. 그렇게 느낄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높이 자존심을 세웠든, 상대가 나를 너무 깍아내렸든. 늘 삶은 변화 가득하고, 나 역시도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르니 오늘 상한 자존심이 영원히 가지는 않을 것이니까.
한성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엮여 사는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갖게 되듯이 말이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했을까? ‘오늘,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결정하는가는 가깝고 먼 미래의 내 모습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고,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나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자존은 스스로 존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 이런 것들이 존재의 힘을 형성하고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것 같다. 지속력이 있다, 회복력이 있다, 영향력이 있다, 이런 말이 자존의 능력치를 표현하는 말로 적당하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배우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존재를 발휘하기 위해 논다.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지속력과 회복력 그리고 영향력을 키워간다고 생각된다.
자존심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 낸 자기애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자기 방어기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존심이 세다고 말한다. 나는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타인을 의식하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존감을 키우기로 했다.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했고, 나의 욕망은 사회와 타인에 대한 이해로 둔감화시키고, 타인의 욕망은 그의 재능으로 파악하고 서로에게 좋은 방향과 방법으로 함께하려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고 싶다. 자존감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고, 지속력과 회복력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
삶이 결코 호락호락 행복을 내어 주진 않는다. 행복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삶의 방법에 대해 늘 성찰하며 반성하고 통찰하는 능력을 간구한다. 늘 감사하고, 기도하고, 기뻐하는 생활 태도와 습관이 요구된다. 이런 습관을 통해 배우고 학습하고 실천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최정연
최근 대전 유성구의 평생교육사와 함께 재미난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고사성어를 테마로 한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나愛 이야기’는 지피지기, 타산지석, 수신제가, 학이시습 네 개로 구성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테마는 ‘타산지석-관계 속에서 찾는 나愛 이야기’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될 네 번의 일정과 담당자가 제시한 주제와 분수, 갑질, 꼰대와 MZ, 며느리와 사위라는 세부 키워드를 전해 듣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평생교육사로 일하며 사람들과 부대끼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조금이라도 더 어우러지며 살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여성이라서 경험했을 많은 역할과 고민이 나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아서 왠지 모를 동질과 안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①슬기로운 관계의 시작, Locus & Focus
②갑질, 문화인가 폭력인가!
③꼰대와 MZ의 이토록 멋진 공생기
④며느리와 사위, 데려온 자식을 위한 전지적 참견 시점
이렇게 일사천리로 개별 강의의 제목을 구성한 나를 스스로 칭찬하며 느낀 행복은 아주 짧았다. 나는 이후 한 달 반의 시간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살아야 했다. TV에 나오는 유명 인문학 강연자들의 잔상이 나를 괴롭혔고 폭넓은 통찰력과 예리한 섬세함으로 인사이트를 주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나를 짓눌렀다. 쉽게 해결 못하는 나를 보며 자존심 상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자기 연민에 빠진 나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을 담당자는 무슨 죄란 말인가. 오락가락하는 머리와 마음을 느끼며 그렇게 나는 서서히 자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존(自尊)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 자존심(自尊心) 또는 자존감(自尊感)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지만 현실에서는 쓰임이 다르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인 자존감과 달리 자존심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경의만을 바라는 이기적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자존심은 타인이 자신을 존중하거나 받들어 주길 바라는 감정을 의미하지만, 자존감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지만 자존심에 의지하는 사람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인정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명 인사도 아니고 깊고 예리한 통찰력은 없을지언정, 배움을 통해 살아가는 삶을 딩굴딩굴 공작소와 함께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책으로 이야기 나누고, 수다로 기획하며 생각의 격을 만들고, 모으고, 나누어왔다. 그 경험들이 소박하다 하여도 내게 세상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익히게 했으니 타산지석으로는 나름 충분하지 않은가. 이렇게 또 자존하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