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딸이 물었다 "왜 공부를 해야 돼?"
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6)
"아빠는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해~ 그런 똑같은 소리 말고 다른 말 좀 해달란 말이야!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하니까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잖아."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하고는 바닥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멍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게...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소리를 한 걸까? 그런데 이게 마땅히 무슨 이유나 방법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을 더욱 꾹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딸이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공부해야지~"
... 라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집에서 할 공부가 많아서 힘들다는 불만이었다. 딸의 하루 '공부량'은 딸이 직접 정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정해줬는데 어느 순간 너무 많다고 힘들어하길래 스스로 정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적은 양을 제시했다. 그래도 그것만큼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길래 동의했다.
정말로 딸은 자신이 정한 양만큼은 매일매일 꼬박꼬박 잘 해냈었다. 그래서 기특하다 싶었는데, 한계가 온 건지 이마저도 힘들다고 더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아니, 아예 집에서 숙제나 공부를 안 하고 싶다고 한다.
하긴... 나 같아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업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싫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서서 다시 공부량을 줄이면 아이는 '아빠에게 떼를 쓰면 통한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딸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정해진 공부는 꼭 해야 된다는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림을 그리는 딸을 소파에 앉아 그저 묵묵히 바라만 봤다.
마음이 아파왔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짜증을 내며 반항 아닌 반항을 하는 딸의 모습이 낯설어서 마음이 아팠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면 가족 중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던 딸이었다.
나에게 항상 다가와서 아빠가 최고라고 말하면서 안기고 무릎에 앉던 딸이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혼자 자기 무섭다고 엄마도 아닌 아빠를 찾던 딸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출근하고 없으면 울면서 나한테 전화를 하던 딸이었다.
엄마는 안 그려줘도 아빠는 종종 그려주던 딸이었다.
그런데, 그런 딸이, 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너무도 낯선 모습에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은 건 누구나 당연한 마음인데, 내가 너무 확대해석하나 싶기도 했고, 아빠와 딸을 넘어서서 내가 너무 딸에게 의지하고 기대가 컸나 싶어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소파에 앉아서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결국 안방으로 들어가서 혼자 있었다. 점점 내 가슴에서 차오르는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나의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나는...
서운했고,
마음이 아팠고,
야속했고,
딸이 어떻게 변해갈지 몰라 두려웠다.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내가 싫었다.
아빠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후 심호흡을 크게 하고 거실로 나와서 딸을 불렀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래도 숙제는 하자."
딸은 나를 바라보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숙제를 했다. 그리고는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현재의 공부 방식이 어떤 점이 힘든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겠는지를 말이다.
딸은 기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말했다.
"공부가 재미가 없어. 지루해. 그래서 하기 싫어."
이 말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문제집만 푸는 방식이 지루했던 것일까?
공부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힘든 것일까?
혹은 문제가 어려워서 풀기 힘들어서 그러는 것일까?
딸에게 질문했지만, 딸은 '모르겠어'라며 더 이상의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딸이 두고 간 문제집을 넘겨봤다.
문제를 풀면서 하기 싫어하는 티가 역력했다.
글씨 크기가 엉망이었고, 지렁이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페이지 중간중간 울고 있는 여자 아이의 그림도 많았다.
숙제를 마친 아이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그냥 '공부해!'라는 말만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등학생 공부해야 하는 이유', '초등학생 공부 동기부여'에 대해서 인터넷과 유튜브를 미친 듯이 검색했다. 아이를 공부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변해갈지 모를 딸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아이 같고, 천진난만하던 딸아이의 모습 속에 남아 있으면 나의 서운함은 길어질 것 같다.
아빠로서 이 말도 안 되는 서운함에 빠져 있지 않으려면 점점 변화하면서 성장해 가는 딸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내가 딸을 키우고 있는 건지,
딸이 나를 키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육아가 원래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