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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yinBath Jul 19. 2023

안녕하세요, 웨스트우드 펍입니다.

1. 네, 한국사람인데 영국시골에 살아요.

난 영국에 산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한국의 작은 술집에서 우연히 영국의 서남쪽 작은 도시, 바스 Bath라는 곳에 사는 영국남자를 만났다. 하필이면 한국에 1년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출장을 온 군함디자이너를 만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난 또 너무나 용감한 성격이라 그 남자를 따라 미지의 땅, 영국으로 와 결혼을 했다. 이런 무모하지만 익사이팅한 일들은 피가 끓는 20대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할렐루야!


처음 몇 년은 영국에 제대로 정작 하지 못했다. 한국이 그립고 이곳의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다. 남편의 일 때문에 1년의 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반을 영국에서 몇 번의 출장으로 시간을 잘라가며 살았기 때문에 영국에 적을 뒀지만 생활인의 마음보다는 여행객의 태도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화양연화였고 연분홍 꽃치마의 시절이었다.


남편의 한국출장이 영영 끝나고 나의 본격적인 영국생활이 시작됐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집안일에 열을 올리며 1년을 보냈다. 사워도우빵을 굽고 셔츠 다림질도 배우고 남편의 점심도시락을 싸고 욕실 수도꼭지 물때를 지우는 일들을 해냈다.


런던 같은 큰 도시로 시집을 갔다면 아마 금방 한국 관련 일을 찾아 오피스 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내가 사는 곳은 영국 중에서도 제일 영국 스럽다는,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작은 도시가 아닌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 오기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밖에 없던 나는 이곳의 대학에서 영국인들의 두 배가 넘는 수업료를 내고 무언가를 다시 배우지 않고서는 오피스 노동자가 되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거다.


영국에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숍어시스턴트였다. 바스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 일 년 내내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특히 런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아기자기한 영국의 정취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나도 처음 몇 년은 여행객의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빈티지 티팟과 찻잔이 나오는 티룸 겸 영국 전역의 아티잔 물건들을 모아 파는 상점에 자주 갔는데 그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하겠다고 말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지만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은 빛을 발했고 주인이 가게를 팔고 이사를 갈 때까지 일한 최장근무직원이라는 영애를 안았다.


두 번째 직장은 바스 시내에 위치한 비건요리학교다. 요리선생이 된 게 아니라 설거지아줌마로 취직했다. 사실 이 소식은 영국가족들과 한국가족들 사이에서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시어머니는 울기까지 하셨다. 집안일 중에서 설거지를 가장 좋아하는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의 반응이 더 놀라웠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옛말은 한국에서만 거짓말이 아니라 이곳 영국에서도 페어리테일 fairytale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난 또 일등 설거지꾼이 됐고 한류 K-culture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에는 가끔 한국음식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다 난 어떻게 영국 컨트리 펍에서 바 메이드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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