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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12. 2024

#021(D-80) 일상의 힘

100일 동안 매일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기로 나자신과 약속했던 날이 어느새 20일이 지났다.

아직까지 그럭저럭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잘 해내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누구나 매일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의 패턴이 있다. 젊었을 때에는 '루틴'이라고도 하는 이 일상의 사소하고 단조로운 반복이 지겨웠고 가치롭게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일, 일상을 탈피하는 사건을 찾았고 반복적인 루틴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하루하루가, 매 시간시간이 참으로 귀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여기‘의 소중함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 일상의 패턴에 다른 무엇인가를 끼워넣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브런치글을 쓰고 싶었지만 늘 다음에 시간될 때, 언젠가 하겠지..이런 식으로 미루기만 하다가 2014년 올해의 '시간성'을 느끼고 100일 글쓰기에 도전했다. 오늘 미국에서 여행 온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여유가 없는데도 짬을 내서 하는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그렇다. 이 브런치 글쓰기도 이제 내 일상에서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10월이 되어 매일매일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이상 가던 요가수련도 잘 못가고 있다. 입시가 코앞이니 앞으로 2주 동안은 나의 루틴에서 우선순위를 아이 입시준비에 맞추기로 했다. 아이가 강행군에 체력적으로 잘 버틸 수 있도록 하루 중 유일한 집밥 한끼인 아침식사를 입맛에 맞게 준비해주는 일(그런데 눈꼽만큼 먹고 거의 다 남긴다), 하루 40여개 연필을 깎고 파렛트를 정리해주는 일, 수업량이 많아 물감이나 붓 등등이 너무 빨리 소모될 때 화방이나 인터넷으로 바로바로 구매해주는 일. 이제 드디어 9일만 지나면 실기 시험일이다. 어제 밤에는 유웨이어플라이로 온라인 원서 접수를 마쳤고, 오늘 아침에 온라인 접수 원서를 칼라출력해서 준비해두었다. 온라인/오프라인 이렇게 두 번 접수를 해야 한다. 월요일에 그 원서를 학교에 가져가서 당임선생님의 확인을 받고 아이가 직접 접수를 하기로 했다. 아이가 매일매일 컨디션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적당히 무심한 듯, 적당히 관심있는 듯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지금부터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냥 평소대로의 실력이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감정의 부침이 심하다. 여하튼, 시간은 지나갈 터이고 곧 끝이 날 것이다.  

이달 말에는 이탈리아에서 한 가족이 우리집 근처로 이사와서 두달 남짓 지내다가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나와 인연이 닿아 한국에 온 사연을 설명하는 건 좀 길고 복잡한데...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장기간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일단 얼마 동안 지내보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와 세 아이들. 쾌활하고 귀여운 가족이다. 단기간 지낼 집을 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월세도 너무 비싸고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어찌어찌 검색을 통해 삼삼엠투라는 어플을 알게 되어 단기간 집을 빌릴 수 있었다. 우리집 근처는 매물 자체가 없어서 차로 10분 거리에 겨우 집을 구했다. 예전 우리 부모님이 사시던 곳이라 나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막내 아이가 이제 겨우 17개월이라 아기 침대도 구해야하고 카시트도 필요하다. 원하는 모델을 물어보고 (휴대용 침대를 원했다) 당근에 검색해서 5만원 정도에 구매하기로 예약을 해두었다. 카시트도 구해야하는데 오래 살 지 않을 수도 있어서 렌트를 해야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더 알아볼 게 많다.  



사람이 자신이 오래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그것도 언어, 문화, 관습이 완전히 다른 낯선 곳으로 살러 간다는 것이 새삼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라면 어찌어찌 대충 살아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아이들까지 동반하면 정말 필요한 물품들이 많아진다.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이 다 포함된 옵션으로 방 두 칸 짜리 작은 빌라를 구하긴 했지만 식사를 해먹으려면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와 기타 도구들이 일일이 다 필요할텐데...부족한대로 하나씩 해결해나가야할 터. 너무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인 건 이들의 집 바로 앞에 작은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길 하나 건너면 큰 공원이 있다는 점이다. 집이 좁아서 처음엔 좀 놀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공원이 있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튼 이 가족이 편안하게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나에게 주어져서 사실 부담이 되지만 입시 끝나는대로 본격적으로 당근도 뒤지고 잘 알아봐서 준비를 해줄 생각이다.


이렇게 보통 때보다 신경쓸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이 쌓여있어서 요즘 내가 좀 예민해있나보다. 오늘 부모님댁에 잠깐 들렀더니 엄마가 어제 나와 통화할 때 내 전화목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서 속상했다고 하신다. 몇 년 전부터 부모님이 핸드폰 전화를 잘 안받으신다. 걱정되서 몇 번을 전화하다가 겨우 연락되면 그 답변이 허무하다. 그냥 진동으로 해둬서 무음으로 해둬서 확인하지 않아서 몰랐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잘 지내신다는 뜻이니 감사하게 생각은 되지만 궁금할 때 혹은 볼일이 있어 통화할 일이 있을때 잘 연결이 되지 않으면 우선 걱정이 되고 그 다음엔  짜증이 날 때가 많다. 보통은 그 짜증을 꾹 눌러 숨기는데 요즘엔 전화를 왜 안받으시냐고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아졌나보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앞으로 2주만 좀 잘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상이 탄력있게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게으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무엇보다 브런치 글을 매일 즐겁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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