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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May 28. 2023

글쓰기는 어떻게 커리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전문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전문가가 되어간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에 앞서 고백하고자 한다. 나는 실은 '커리어의 성장'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할 만큼의 배경도, 역량도, 성취도 아직 없다. 이런저런 커리어의 방황기를 거쳐왔고, 이제 겨우 5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니어를 벗어났지만 시니어는 아직 먼, 그런 어중간한 대한민국의 직장인 중 한명일뿐이다.


그럼에도 '커리어의 성장'을 제목에 쓴 이유는, 글쓰기와 커리어, 그리고 성장에 대해 얼마간 체험하고 또 믿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글은 현재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내놓는 한시적인 생각과 의견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경험하고 또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커리어의 성장을 희망하는 주니어들을 위해, 동료로서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1. 글쓰기의 힘 : 메타인지


글쓰기는 무엇에 이로울까. 아니, 애초에 글은 무엇에 이로울까.


좋은 글은 독자에게 이롭지만, 아무리 좋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그 글이 이야기하는 바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결코 가닿지 못한다. 또한 글이 완성되어 누군가 읽기 전까지는, 글의 가치는 전해지지 않는다. 글은 분명 이롭지만, 일차적으로 글쓴이가 아닌 독자에게 이로우며,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아주 일부에게만 크게 이로울 뿐이고, 그마저도 대부분에겐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완성된 '글'과 달리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는, 글을 쓰는 작가 그 본인에게 언제나 이롭다. 글의 가치는 글이 완성된 뒤에야 생겨나고 또 전달될 수 있지만, 작가는 글을 쓰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모르는 것을 찾아보며 새로 배운다. 과정 중에 가치가 생겨난다. 또한 이는 글의 장르나 구성과도 무관하게 언제나 가능하다. 

퍼널Funnel 관점에서 바라본 글과 글쓰기. 글쓴이는 글쓰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글쓰기의 효용을 체감한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이의 메타인지 능력을 키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돌이켜보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던가,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던가, 당시 상황은 어찌하여 그렇게 흘러갔는가. 제1자, 이른바 주인공의 시선과 입장은 무엇보다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스스로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제3자의 시선은 그 너머에 있는 배경과 맥락을 바라본다. 글쓰기는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선을 갖게 한다.


글쓰기는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선을 갖게 한다


제3자로서 당시를 메타적으로 돌이켜볼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시의 사건과 사고, 이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시의 나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다만 이때의 '글쓰기'는 오늘의 사건과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는 '일기'와는 다르다. 일기는 주인공의 시선으로서 오로지 자신에 집중한다. 사건의 단순 나열, 그리고 자기 이해 내지는 자기 옹호에서 그친다. 반면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종의 '콘텐츠'로서의 글은, 종류나 깊이가 무엇이 되었든 타인에게 향하는 가치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 



2. 메타인지의 힘 : 돌이켜보고 개선하기


글쓰기를 통해 갖게 된 객관적이고 넓은 시선은 비로소 스스로의 일과 생활을 돌이켜보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이른바 '회고'라고 부르는 이 과정 혹은 결과물은, 오늘날 많은 조직에서 차용한다. 


특히 정형화된 매뉴얼을 고수하며 매뉴얼과 다른 상황을 오류나 실패로 판단하여, 사건 경위서의 형태로 과거를 반추하는 기성 조직과 달리, 늘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조직과 그 조직의 구성원에게는 모든 사건이 처음의 예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상 밖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은 회고뿐이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중에서 무엇이 기대와 달랐는가, 그중에서 좋은 것은 무엇이었고 나쁜 것은 무엇이었는가, 좋은 것을 유지하고 나쁜 것은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정확히는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이 회고인 것이다. 

회고의 대표적인 프레임워크 중 하나인 KPT. 기대와 다른 현실에 더욱 잘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Keep, Problem, Try의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3. 회고의 힘 : 성장의 플라이 휠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 터득한 지식과 경험은 노하우는 다음에 맞닥뜨리는 새로운 외부의 사건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한다. 모든 개별 사건은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본질은 대동소이하다. 100개의 새로움 중 분명 80개 정도는 이전에 회고를 통해 획득한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처럼 메타인지를 통해 나와 상황을 바라보고 회고하여 새로운 배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개인이나 조직이라면, 만약 이번에 제대로 된 대응에 실패한 20개의 새로운 사건을 다음번엔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성장의 지속 가능한 구조, 이른바 '플라이 휠'을 갖추게 된다. 이것이 회고의 힘이고, 회고를 가능케 하는 메타인지의 힘이다. 

늘 예상과 다른 결말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조직과 개인이 회고를 통해 능력을 쌓아가는 과정



4. 글의 힘 : 나눔과 성장, 그리고 에너지


이러한 과정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정형화된 형태로 정리하면 비로소 글이 완성된다. 이때에 핵심은 한 명이 되었든 만 명이 되었든 나 아닌 누군가에게 정보와 의미 등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겪은 고민을 지금 겪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경험한 문제를 맞닥뜨린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겪은 실패를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정보와 의미가 있다면, 이를 담은 글의 분량과 형태, 문단의 짜임새나 문장의 힘, 어휘의 정확함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리고 이 과정 혹은 결과물이 글을 쓰는 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째, 글을 쓰는 과정에서 메타인지를 키웠다면, 이를 타인을 위한 콘텐츠로서의 글로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글쓴이는 비로소 현재 시점의 나에 대해서도 메타인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던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히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글은 오로지 '자신이 아는 것' 또는 '알고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쓸 방법은 없으니까. 


이 과정을 통해 글쓴이는 자신에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고, 필요하다면 이를 충족할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자연스레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충족할 계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모든 걸 아는 전문가라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글을 씀으로써 전문가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는 과정을 통해 전문가가 되어간다


둘째, 글을 쓰고 누군가와 나누는 행위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비단 커리어와 관련된 글뿐만이 아니다. 에세이를 쓰든, 커리어에 관한 정보나 노하우의 글을 쓰든, 누군가에게 가치가 전달된 글이라면 그중 누군가는 분명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브런치에는 댓글이, SNS에는 좋아요가 생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글을 쓰고 나눌 원동력이 된다. 자기 성장을 위해 쓴 글이 타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이게 다시 글을 쓰게 만든다.  


얼마 전 다녀온 기업강의의 후기. 부산에서 진행한 8시간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분위기와 더불어 강의 평가를 통해 오히려 에너지를 얻었다.


이처럼 나눔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경험은 비단 나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스승의 날, 학부 시절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해주셨던 은사님께 메일을 드렸다. '현업에서 멘토링을 통해 오히려 배우고 또 얻는 게 많은 것 같고, 교수님께도 저희가 그런 에너지를 드릴 수 있는 학생이자 후배였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드렸는데, 돌아온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학생과의 면담은 서로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인 것 같아. 한쪽으로만 에너지가 흘러가지 않더라고. 학생에게서 배우는 점도 참 많아."


한쪽으로만 에너지가 흘러가지 않더라고. 학생에게서 배우는 점도 참 많아.  

스승의 날을 맞이해 학사 시절 은사님께 보낸 편지에 돌아온 답장. 나눔의 힘은 양쪽 모두에게 전해진다는 말씀이 담겨 있었다.



성장은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언제고 분명 일어나니까


글쓰기를 통한 메타인지의 훈련부터 회고, 플라이 휠, 그리고 나눔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글과 글쓰기에 관련된 이것저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메타인지를 훈련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명확하게 돌이켜보고 완벽한 개선책을 내놓게 되는 것도 아니고, 회고를 한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무조건 성공하거나 기획자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이른바 '조회수 대박'의 글을 쓰게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하거나 강의를 다녀온다고 해서 무조건 반응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건 성장이 아닌 성과 내지는 성공의 영역이고, 성과와 성공의 대부분은 결국 운과 확률의 소관이라는 게 세상에 이어져 온 오랜 이야기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려고 한다. 성과와 성공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성장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언제고 분명 일어나니까. 반면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상황과 맥락이 어떻든 성장의 여지는 늘 있으니까. 


결국 커리어의 환경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성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나와 주변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회고하여 개선하고, 나누고 또 에너지를 얻게 해주는 글쓰기는 분명 커리어의 성장을 위한 괜찮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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