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지표, 선행 지표, 그리고 가드레일
처음 PM/PO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바로 지표 설계였습니다. 수많은 지표 중 무엇을 봐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제품과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봤음에도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날이 있는가 하면, 분명 특정 지표가 큰 폭으로 개선되었음에도 매출 혹은 사용자의 반응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지표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고 길을 잃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지표에도 우선순위가 있음을 깨닫고 이해했습니다. 지표는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지표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이는 마치 건강검진과 같습니다. 자세한 파악을 위해 건강검진을 하곤 하지만, 일상에서 그 모든 수치를 매일같이 확인하며 관리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통한 분석, 기획, 검증에 앞서 PM/PO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제품과 서비스의 성장에 직결되는 핵심 지표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럼 대체 어떤 지표를 봐야할까요?
첫 번째 지표는 바로 핵심 지표(Key Metric)입니다. 지표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팀이 지금 하는 이 일이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수 혹은 본질에 가깝습니다. PM/PO가 제품을 만들고, 기능을 개선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험을 돌리는 모든 이유는 바로 이 ‘핵심 지표’를 의미 있게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컨대 온라인 클래스 서비스에서 핵심 지표는 수강 완료율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표는 수강신청자 수 또는 수강신청을 통해 발생한 매출액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지표는 중요합니다. 사업성과를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니까요. 그러나 이보다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이 클래스는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고객이 이 서비스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경험하길 바라는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하는 수단'이라는 제품/서비스의 본질 혹은 정의를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수강신청 수가 아니라 끝까지 수업을 듣고, 배움의 가치를 얻어간 사용자 수가 제품/서비스의 진짜 목적과 연결됩니다. 이는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결제만 완료하고 수강하지 않은 사용자보다 실제로 학습 경험을 완주한 사용자가 더 큰 가치를 느끼고, 더 오래 머물며, 더 많은 추천을 하는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유사한 예로 이커머스 서비스에서 핵심 지표는 재구매율일 수 있습니다. 편리하고 합리적인 탐색 및 구매 매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한 번 사게 하는 것보다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더 깊은 신뢰와 만족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뉴스레터 기반 커뮤니티라면, 핵심 지표는 주간 열람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가 콘텐츠의 품질 혹은 커뮤니티의 건강성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핵심 지표는 단순히 ‘매출에 가까운 지표’가 아니라 서비스의 존재 이유와 고객에게 주고자 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지표여야 합니다. 그리고 PM/PO는 이 핵심 지표를 가장 앞에 세워야 합니다. 로드맵 설계, 리소스 배분 및 조율 등 모든 의사결정이 이 핵심 지표와 연결되어야 제품의 일관된 방향이 유지되며, 제품의 존재 목적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 지표를 설정했다면 이제 그 지표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살펴야 합니다. PM/PO의 역할은 단지 결과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요인이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지금 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를 빠르게 감지하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움직이는 지표들, 즉 선행 지표(Leading Indicator)를 관찰합니다. 또는 핵심 지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보조 지표(Supporting Metric)를 함께 봐야 합니다. 핵심 지표가 제품의 정수이자 본질이며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을 나타낸 지표라면, 선행 지표와 보조 지표는 핵심 지표를 견인하는 원인 혹은 앞서 나타나는 징후에 가깝습니다. 핵심 지표보다 조금 더 앞서서 변화의 방향을 알려주는 사전 신호입니다.
예컨대 온라인 클래스 서비스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핵심 지표가 ‘수강 완료율’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수강 완료율은 사용자가 강의를 다 들어야 집계되는 느린 지표입니다. 오늘 시도한 개선이 효과가 있는지 알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행 지표’를 먼저 봅니다. 수강 완료율에 영향을 주는, 앞단의 행동 변화입니다. 1~2강 수강 완료율이 높아지고 있는지, 첫 과제를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제출했는지, 강의 시청 중간 이탈률이 줄어들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 지표들은 수업을 끝까지 들을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수강 완료율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는 힌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학습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을 함께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보조 지표입니다. 수강생 커뮤니티 참여율, 수업 리마인드 알림 클릭률, 퀴즈 정답률 등의 지표들은 수업의 몰입도와 콘텐츠 이해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PM/PO로서 선행 지표와 보조 지표를 잘 설정해 두면 실험의 효과를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핵심 지표에 도달하는 여정을 더 명확히 추적할 수 있습니다.
PM/PO는 고객 학습과 실험, 제품과 기능의 개선을 통해 성과를 책임지는 담당자이자 리더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종종 성과라는 이름 아래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이탈률을 줄이기 위해 과제를 너무 쉽게 만들었더니 수업의 질이 무너졌다는 피드백이 들어오고, 전환율을 올리기 위해 알림을 과하게 보내다가 사용자 이탈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가드레일 지표(Guardrail Metric)입니다. 가드레일 지표는 우리가 결코 넘어서거나 무너뜨리지 말아야 할 기준선입니다. 핵심 지표가 아무리 올라가도, 이 지표가 무너진다면 그 실험이나 전략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온라인 클래스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개선한 덕분에 수강 완료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고 가정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좋은 성과’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용자 불만 리뷰가 크게 늘었다면 어떨까요? ‘강의 난이도가 낮아졌다’, ‘과제가 지나치게 단순하다’, ‘기계적으로 과제를 내면 끝나는 느낌이다’는 피드백이 늘어났다면 분명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이 밖에도 이커머스 서비스에서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푸시 알림을 늘렸더니 단기적으로 클릭률이 높아지고 구매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앱 삭제율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일부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끼고 서비스를 떠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잠시 멈춰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올린 숫자는 정말로 가치 있는가?”,
“그 숫자를 얻기 위해 포기한 것은 없는가?”,
"눈에 보이는 성과 외에도 우리가 지키고 잊지 말아야 할 가치나 방향은 없는가?"
가드레일 지표는 우리에게 ‘잠깐 멈추고 돌아보라’고 말해주는 경고등 같은 지표입니다. 눈앞의 성과가 크더라도, 장기적인 신뢰나 가치를 잃는다면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곧 방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PM/PO는 핵심 지표를 쫓는 동시에, 가드레일 지표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과와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움직이는 것이 이 역할의 어려움이자 묘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PM/PO로서 일하다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숫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대시보드는 화려하고, 수치는 풍부하며, 데이터는 끝없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 안에 빠져들다 보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조차 잊게 될 때가 있습니다. 수치는 늘지만 의미는 사라지고, 기획은 반복되지만 방향은 흐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표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핵심 지표는 우리가 진짜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선행과 보조 지표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혹은 수단을, 가드레일 지표는 그 여정 속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보여줍니다.
모든 지표를 쫓는 순간, 우리는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지표를 중심에 세우는 순간 그 하나의 방향이 팀을, 제품을, 나 자신을 흔들림 없이 이끌게 됩니다. 그러니 수많은 실험과 데이터 속에서 중심을 잡고 싶다면 핵심 지표, 선행 지표, 가드레일 지표의 구조를 먼저 그려보길 제안합니다. 그리고 매주 또는 매 Sprint 회고마다 이렇게 자문해 보기를 추천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지?”
“지금의 결과는 좋은 징후일까?”
“지금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조금 더 좋은 PM/PO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