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너의 눈동자
지난 번 시카고 여행 때 나는 엄마 아빠 몰래 스냅 사진 촬영을 계획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아빠, 꼭 흰색 셔츠 챙겨~!'라고만 말했다. 시카고 밤의 도시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촬영을 한 우리는 아주 많이 웃었다.
여행은 남는 게 사진이라는데, 특히 잘 나온 사진은 두고 두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하거나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서 오래 보게 된다. 시카고 사진을 오랫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았던 엄마, 아빠를 보면서 여행지마다 가능하다면 스냅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발리에서도 스냅 사진을 미리 예약했다. 어떤 사진작가에게 찍을지 엄청 고민했는데, 처음으로 현지 작가에게 스냅 사진을 맡기게 됐다. 한국 작가에게 찍을까도 생각했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현지작가의 사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스냅 찍는 날 우리는 이미 땡볕을 한참 걸어다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난 머리카락까지 젖었다. 나중에 사진 작가가 보정해주겠지 생각하고 땀에 절은 채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미리 상의했던 레퍼런스와 비슷한 장소들을 작가님이 잘도 찾아왔다. 발리의 우붓 느낌이 그득한 녹음 사이로. 아빠, 엄마는 시카고 때도 그렇고 몇 번 이런 사진을 찍어봐서 그런지 이제는 아주 선수다. 둘이 자연스레 대화하고 웃으면서 내 쪽으로 걸어온다.
셋이서도 서로 마주보고, 일렬로 서서, 걸어가면서, 구경하는 척하면서 1시간을 꽉 채워 우붓의 곳곳을 걸어다녔다. 아빠랑 둘이 걷는 장면이었던가, 셋이 웃는 장면이었던가 기억이 안나는데 아빠랑 나랑 서로 마주 본채로 몇 초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에 우리는 아주 잠깐씩만 눈이 마주친다. 이렇게 몇 초간 뚫어지게 서로의 눈을 볼 일이 거의 없다. 아빠랑 마주보는 그 순간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동시에 '내가 언제 아빠 눈을 이렇게 오래 쳐다봤지?'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지금이라도 아빠의 눈을 오랫동안 쳐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다. 아빠도 나랑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눈빛이 좀 흔들렸지만 다정함을 가득 담아 나를 쳐다봤을 것이다.
이번 발리 여행을 떠올리면 머릿속을 스쳐가는 장면이 또 몇개가 있다. 엄마랑 둘이서 지프 뒷자석에 앉아 90도로 목을 꺾어 쏟아지는 별을 보던 순간, 떙볕에서 셋이 말을 타고 더워서 힘들어하던 순간, 길리섬에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물 속을 누볐던 순간, 셋이서 우주인 같은 모자를 쓰고 바다 밑에서 물고기들에게 둘러쌓인 순간, 카페에서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얘기를 신나서 떠들던 순간... 쓰자니 끝이 없다. 저 끝 없는 나의 순간들에 아빠랑 눈을 마주친 이 몇초도 포함된다.
아빠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리고 지금 아빠의 눈을 쳐다봤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울기 직전 코 끝 찡한 상태가 되버린다. 아빠가 날 쳐다보는 그 눈빛 안에 지금까지 내가 커 오던 그 시간들이 담겨 있고, 또 아빠 나름대로의 노력과 무게감을 알아가는 내가 담겨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