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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마주마 Feb 06. 2024

너에게 유일한 사람, 유일한 엄마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 다는 것

내가 처음 설렌 적은 언제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설렘"이라는 기억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밸런타인데이쯤이었던 것 같다.


황 씨 성을 가진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초콜릿을 주던 날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300원짜리 가나 초콜릿. 직접 전해 주기가 너무 부끄러워 옆에 있던 같은 반 여자아이에게 부탁했다. 그 친구는 학교 현관에서 얼른 신발을 갈아 신고,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황 씨에게 뛰어갔다. 나는 들킬세라 벽 뒤로 돌아가 훔쳐보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으아~~~"

순간 얼굴이 고구마가 되어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나의 첫 밸런타인데이였다.   






인생의 설렘은 생각보다 그리 자주 오지 않았다.

서른이 다 되어갈 때쯤 만난 남편과 결혼하고, 오만가지 허례허식을 곁들인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그 순간!

그리고 신비로우면서도 힘든 임신의 기간을 거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의 이목구비를 확인하, 그 아이의 순수하고, 결백한 얼굴에 나의 때 묻은 얼굴을 조심스레 비벼보는 순간!




"설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 우리 집에는 설렘이 사라졌다.

온통 쌓인 설거지와 빨래들.

사방에 널려 내 발바닥을 쿡쿡 찌르는 오색빛깔의 장난감들.

그리고 쉴 새 없이 들리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




설렘은 개뿔.

침대에 누워 잠이라도 실컷 자보고 싶다.

그 생각을 하니 설렌다. 아이들 없이, 혼자 큰 침대에서 오롯이 혼자 잠을 자는 생각!!!


 




사회의 불만과 사람들을 향한 불안으로 가득 찼던 나의 20대.

그때 최대의 관심사이자 목표는 결혼이었다. 나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런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이터 가고, 낮잠 재우고... 

다시 먹이고, 놀이터 가고, 씻기고, 재우고...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는 잊어버린 채 아이가 잠이 든 시간과 아이가 밥 먹은 시간으로 나의 하루는 기억된다.

   


그네도 하나 없는 아파트 놀이터를 하루 두 탕씩 뛰다가, 맞은편에서 빨간 휴대용 유모차를 흔들어 재끼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 주위에는 서너 살, 그리고 대여섯 살로 보이는 두 아들이 놀이터를 누비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유모차를 거칠게 흔들며 슬픔 반, 절규 반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정작 듣는 이 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보고 있는 내가 더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아주머니의 모습이 자꾸 스쳐간다. 잔뜩 찌부러진 아주머니의 슬픈 얼굴이 조금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 내 모습도 저렇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이 화를 낼 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놀이터에서 아이의 체력을 실컷 빼고 집으로 돌아와 막 낮잠에 들기 시작한 아이의 옆에 누웠다.

참~ 평화로운 얼굴이다.

아이의 세상은 평화롭다. 편안하다.

무엇이 이 아이에게 이렇게 달콤한 세상을 주었을까?


...

그것은

바로 "엄마"라는 존재겠지.

옆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겠지...

아이가 잠든 틈에 화장실만 다녀오려고 해도 빈자리를 귀신같이 알고, 눈을 딱 떠버리는 아이다.

이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자, 세상의 평화다.

아이에게 나는, 내 이름  글자 세상의 전부이자, 평화인 것이다.



낮잠을 시원하게 자고 일어난 아이는 짧고, 통통한 앙증맞은 팔을 내게 뻗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안아달라는 사인이다.

나는 상체를 깊이 숙여 두 가슴을 맞닿는다. 그러면 아이는 짧은 팔로 내 목을 힘껏 끌어당겨 볼을 실컷 비다.


그 작고 탱탱한 볼의 기습 공격.

안경을 벗을 틈도 없이 당해버렸다. 그 작고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나를 안아주는 아이의 품 안에서... 나우습게도 눈물이 나고 말았다.  

보조개 공주님



그 아이의 가슴에서 나는 뜨거운 무엇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있기에는 나의 고질병인 목디스크 + 집안일이 너무 많았다.

"이제 그만, 손 놔줘~ 엄마 힘들어~"

감동과 동시에 짜증이 느껴지는 희한한 순간이다.



엄마로서의 삶은 외롭고, 힘들다.

끝나지 않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많은 책임 엄마에게 있다. 얼른 밀린 일을 해치우려고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데, 아이의 2차 공격이 들어왔다.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는 최고야!"

나는 K.O를 당한 선수 마냥 바닥에 두 무릎을 꿇어 아이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 내가 주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는 아이.



세상에 길이 남을 만한 일은커녕, 소소한 꿈조차 이뤄보지 못한 내게... 아이는 아무런 기준 없이 나를 "최고의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그저 아이를 봐주고, 먹여준 일, 잠깐씩 놀아준 일, 부모로서 당연한 그 일들이 아이에게는 최고라 생각되었나 보다. 아니면 아이 스스로도 엄마에게 "위로 혹은 칭찬"이라는 보답을 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조금 더 좋은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을 해본다. 그냥 엄마가 아니라 "너의 유일한 엄마"로써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너를 안아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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