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김현주(3)

서로의 믿음으로 함께

by 진키

서로의 믿음으로 함께

결혼 후 그녀에게 달콤한 신혼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기를 돌보며 동시에 일을 감당해야 했고,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늘 긴장이 따라붙었다.

회사의 운영은 쉽지 않았다.

시작 단계의 회사는 늘 자금 사정이 빠듯했고,

생활은 그 무게만큼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졌다.

남편은 성실했다.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며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그런 남편을 믿었다.

그 믿음이야말로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었고,

그녀 또한 그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남들이 한 시간을 일할 때, 그녀는 두 시간을 일했다.

지쳐 쓰러질 법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 기쁨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교육을 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매달 조금씩 줄어드는 빚의 숫자가 주는 작은 희망.

그 희망이 그녀를 다시 재봉틀 앞에 앉히고,

새벽에도 불을 켜게 했다.

풍족하진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절약하며 살았다.

“못사는 사람은 두 부류예요.

더 아끼거나, 더 쓰거나.

나는 아끼는 쪽이었어요.

뭐 하나 사면 끝까지 쓰고,

쓸데없이 나가는 지출은 늘 아까웠죠.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그녀의 삶은 절약과 성실로 꿰매어진 옷과도 같았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하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옷.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삶은 또다시

그녀 앞에 새로운 시련을 내밀었다.

얼마 전, 남편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정기적인 색전술 치료를 위해 수술대에 오를 때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평생 버팀목이라 믿어왔던 그가

이제는 더딘 회복에 지쳐 보였고,

사소한 일상의 기억조차 이따금 놓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곁을 지키며, 더 단단해졌다.

남편이 서 있는 자리,

그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녀는 동행했다.

병환 이후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노인정을 찾았다.

실은 그녀의 나이로는 아직 이른 자리였다.

그러나 그녀와 나이차가 있는 남편을 위해,

조금이라도 회복에 도움이 되고자 선택한 길이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함께 배우는 시간이

그의 삶에 작은 활력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늘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그림자가 되었고,

남편은 그녀의 그림자가 되었다.

서로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서로의 호흡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부부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힘든 짐을 함께 나누고,

작은 기쁨에도 함께 웃으며,

병든 몸을 부축하며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

그 단순하지만 굳건한 동행 속에서

그녀는 사랑의 가장 진실한 얼굴을 보았다.


꿈꾸는 미래

그녀는 늘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했다.

악기도 배우고 싶었고, 노래 교실도 다녀보고 싶었지만

살아오며 그런 여유를 누릴 틈이 없었다.

그 아쉬움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배워보고 싶어요.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훨씬 나아요.

힘들어 지쳐도 멍하니 앉아 있기보다는

뭐라도 배우고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최근 시작한 파크골프도 그랬다.

그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웃을 수 있는 시간,

생활 속 작은 활력이 되어주었다.

큰 성취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 소소한 즐거움이 그녀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으니까.

언젠가 체력이 허락하는 날,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을 마음껏 떠나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속에서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 싶었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좋아요.

대화 속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내가 몰랐던 경험을 배우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하는 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노인정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함께 웃고 배우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녀에게 배움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희망을 이어가는 방법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끝까지 붙잡고 걷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삶은 끝없이 배워가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그 길 끝에는 언제나 ‘함께’라는 이름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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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한테 하고 싶은말

얘들아,

엄마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넘어지고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언제나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그 고단했던 날들이 헛되지 않았던 건,

너희가 이렇게 곧고 반듯하게 자라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때로 너희를 시험할 거다.

눈앞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유혹이 놓일 때도 있고,

사람들 틈 속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을 거다.

그럴 때일수록 꼭 기억하렴.

남에게 피해 주지 말아라.

차라리 네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 선택이 결국 돌아와 너희 삶을 지켜줄 것이다.

순간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영원히 지켜야 할 것을 잃지 말아라.

그것은 양심일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다.

그걸 놓치는 순간,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거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늘 긍정으로 바라보아라.

억울하고 지친 날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법이다.

세상의 흐름에 휘둘리지 말고,

맞지 않는 자리에 억지로 발을 들이지도 말아라.

그럴 땐 차라리 잠시 멈추어라.

움직이지 않는 그 고요한 순간이

오히려 너희를 지켜줄 때도 있다.

얘들아,

엄마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늘 부족했고, 늘 미안했고,

다 해주지 못한 것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단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엄마가 가진 모든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희에게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엄마의 전부는 결국 ‘가족’이었다.

그리고 너희는 엄마 인생의 가장 큰 기적이었다.

부디, 너희의 삶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가족이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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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딸이 쓰는 편지

아빠의 까무잡잡하고 단단한 몸을 닮은 저는

느긋한 성격까지 닮아,

성격이 급한 엄마에겐 늘 답답한 딸이었을 거예요.

어린 시절엔 저를 기다려주지 않고 채근만 하는 엄마가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독립적으로 두었던 저와 달리

동생을 전전긍긍하며 챙기는 모습엔 질투도 났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워킹맘이었던 엄마에겐 늘 시간이 부족했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유독 마음을 놓기 어려운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아이를 낳고 난 후 엄마의 말에 상처도 받았지만,

결국 그것이 엄마의 무게와 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녀로서, 또 회사를 꾸려가는 아빠의 동반자로서,

엄마는 늘 빠른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기록장을 채우던 기억,

은행에 가서 직접 통장을 들여다보던 추억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제게만 남겨진 특별한 기억이 되었어요.

최근엔 제가 어릴 적 무용을 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는 제 말을 듣고,

집안을 뒤져 옛 동영상을 찾아

손주에게 보여주려는 엄마의 모습에서

깊은 미안함과 사랑이 전해져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흔들릴 때마다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엄마처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엄마를 닮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았던 엄마처럼,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셨던 엄마,

이제야 제 마음 깊은 소리를 꺼내봅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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