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게 자라라는 '현주(賢珠)'라는 이름의 울림
어질게 자라라는 '현주(賢珠)'라는 이름의 울림
'마음을 비추는 지혜의 빛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
'어진 품성으로 사람들을 품고,
그 존재만으로도 삶을 빛나게 하는 보배.'
이름의 뜻은 단순한 소망을 넘어,
그녀라는 사람의 결을 닮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자리한 포근한 미소는
특별한 화장이나 꾸밈이 없어도 따스했다.
그 미소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겨울 햇살처럼 은근하지만,
얼어붙은 땅을 녹여내는 힘.
그래서 그녀와 함께 앉아 있으면
세상의 온기가 한 곳으로 모인 듯했다.
열대야가 계속되던 7월의 수요일,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마주 앉은자리 위에는
여름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복숭아.
냉장고에서 갓 꺼낸 단단한 과육이 칼끝에
서걱서걱 잘려 동그란 접시 위에 둥글게 배열되었다.
복숭아의 먼지를 씻어내는 맑고 시원한 물줄기 소리
무더운 날씨를 증명하듯 윙윙 돌아가는 실외기 소리
모든 풍경이 계절의 무게를 실어 우리 앞에 내려앉았다.
복숭아를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순간,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흘러들며
여름 한 조각이 혀끝에서 터졌다.
마치 계절을 통째로 삼킨 듯,
싱그러움 속에 따뜻함이 스며드는 기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녀야말로 여름을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청량하지만 따스하고, 풍성하지만 담백하며,
함께 있는 이에게 계절 같은 위안을 나누어 주는 사람.
그녀와의 인터뷰는 달콤한 과즙처럼 시작되었다.
흔들리던 날에 닿은 위로
1962년 8월, 평안도 출신의 아버지가
정착한 해방촌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산동네의 비탈길과 좁은 골목,
그곳의 공기는 늘 눅눅한 삶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신림동과 흑석동으로 이어지는
이주의 발자취 위에 놓여 있었다.
명수초등학교에 다니던 소녀의 마음속에는,
어느 날부터 가야금이 자리했다.
손끝으로 뜯어내는 맑은 현의 울림에 가슴이 동하곤 했지만,
집안 사정은 그 꿈을 단번에 지워내기에 충분했다.
동네를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차이는
어린 마음에도 생생했다.
또래 아이들의 말투, 옷차림, 집안 사정의 풍경이 달랐고,
그 미묘한 차이가 스스로를 작은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었다.
친구들과 사는 형편이 다르다는 깨달음은
어쩐지 쓸쓸했고, 어린 자존심을 흔들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무심코 문에 기대던 순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쓰러지며 그녀의 팔을 덮쳤다.
즉시 극심한 통증과 부종이 나타났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태권도 사범들이 탈구로 오인해
여러 차례 강제로 관절을 맞추려 했으나,
통증은 오히려 심해졌다.
열흘이 지나 찾아간 병원에서는
팔뼈가 이미 잘못된 각도로
붙어버렸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시간이 지체된 탓에 단순 교정으로는 불가능했고,
결국 접골병원에서 고의적으로 뼈를 다시 골절시킨 뒤
정상적인 위치로 재정복(再整復)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치료라기보다는 다시 시작하는 고통의 경험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온몸이 욱신거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집안은 고요했지만,
얇은 벽 너머로 부모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이어진 아버지의 말은 그녀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다.
"그날 밤에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가 나누시는
대화가 들렸어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네 자식이었어도 병원에 바로 안 데리고 갔을 거냐'고요.
그때 알았어요.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걸요"
그녀가 ‘엄마’라 부르던 사람은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입에서 무심히 흘러나왔다.
순간, 세상이 무너졌다.
삶이 한순간에 비틀려 어긋나는 소리를
그녀는 뼛속 깊이 들어야 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의 울타리는
그날 밤 산산이 갈라졌다.
동생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비밀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베어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집안의 한 자리가 아니라,
비껴 난 자리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못 붙은 팔처럼,
가족이라는 뼈대 속에서 어긋난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깊은 외로움과 마주해야 했다.
식탁 위의 웃음소리에도, 방 안의 온기 속에서도
자신은 늘 바깥에 서 있는 듯했다.
그 고독은 사춘기의 불안과 겹쳐
끝없는 낯섦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가 향한 곳은 교회였다.
빈 의자에 홀로 앉아 두 손을 모으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마음이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내가 보이지 않을 때면 늘 교회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왜 그렇게 교회를 찾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그곳에서 버틸 힘을 얻었던 건 분명합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좋은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다른 사람들에 비해 믿음이 깊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들었던 위로와 다정한 말들이 있었기에
저는 길을 잃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로운 사춘기의 시간,
믿음은 그녀를 세상과 이어주는 마지막 끈이었다.
종교는 무너질 듯 흔들리던 청춘의 기슭에서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 믿음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그녀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 숨결이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