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김현주(2)

by 진키

재봉틀 소리와 함께 찾아온 인연

그녀의 첫 직장은 뒷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색연필 공장이었다.

좁은 작업장 안, 연필심의 냄새와 톱밥 가루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하루는 지루하게 흘렀다.

아버지는

'이건 평생 할 일이 못 된다. 기술을 배워야 산다.'고

말씀하셨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미싱사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코오롱 숙녀복 미싱사의 보조로 들어갔다.

낡은 재봉틀이 쉼 없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가위질 소리, 바늘이 천을 뚫고 나아가는 소리가

뒤엉킨 재단실은 그녀의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심부름을 하며 일을 거들었지만,

손끝은 이미 바늘의 리듬을 기억했고

눈은 천의 재단선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배워 나갔다.

그녀는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다.

남들이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것도

그녀는 열 번 더 고민했다.

퇴근길 버스 창밖에 걸린 옷 한 벌을 보아도

‘저 옷은 어떻게 재단했을까, 어떤 박음질로 마무리했을까’

머릿속은 끝없이 물음표와 상상으로 가득 찼다.

그 호기심이 그녀를 더 단단히 키워냈고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스물두 살, 그녀는 주양견본실에 입사했다.

견본실은 패션의 최전선이었다.

디자이너들의 까다로운 요구, 촉박한 납기,

긴장과 압박이 교차하는 현장이었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정확했고, 눈은 치밀했으며,

목소리는 단단했다.

작업장에서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앞장섰다.

스스로의 권리를, 동료들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리더십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그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세 배나 높은 월급을 받으며

누구보다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고비를 내민다.

해방촌에 위치한 시장 옷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사장이 갑작스레 외국으로 떠나며 일터는

하루아침에 문 닫을 위기에 몰렸다.

작업대 위에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옷감들이 널려 있었고,

재봉틀은 덩그러니 멈춘 채 쓸쓸한 침묵을 삼켰다.

직원들 사이에서 한숨이 흘렀다.

그러나 기적처럼, 새로운 사장이 회사를 인수하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간판은 ‘상신’으로 바뀌었고,

정지되었던 재봉틀은 다시 드르륵 소리를 내며 살아났다.

공장은 다시 숨을 쉬었고, 그녀의 삶 또한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났다.

재단실 사이로 스쳐 지나가던 한 남자,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삶의 옷감 속에서 스쳐간 한 올의 실이,

그녀의 인생을 하나의 옷처럼

정교하게 꿰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전부, 가족

상신에서의 나날은 그녀에게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생의 또 다른 길목이었고,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된 무대였다.

그는 총각 사장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절도 있고 성실한 성품까지 겸비해

함께 일하던 언니들이 은근히 흠모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나이 차가 있었고, 특별한 호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술자리에 앉아도 흐트러지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그의 태도는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 남자는 사랑에 있어 늘 소극적이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먼저 찾아왔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결혼보다 앞선 선택이었지만,

흔들림 없이 출산을 택했다.

“속 얘기도 안 하고 소극적인 남자인지라

결혼 전에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시댁에 못하더라구요.

저 또한 체구가 작아서 만삭이 되어도

주변에서 아무도 임신 사실을 몰랐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혼자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젖이 불어서 힘들었어요.

그 당시 적지 않은 보육비를 내고

교회 목사님께 아이를 맡기고 일을 했어요.

아이가 돌이 다 되어갈 즈음,

보다 못해 답답했던 제 친구가

직접 시댁으로 가서 아이가 생겼다고 얘기해줬어요.

그 덕에 양가 식구들이

아이와 우리의 관계를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을 이어준 딸아이 덕에,

1년 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을 올리며 평생을 약속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둘째 아들까지 얻으면서

가족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바쁜 그녀를 대신해 친정 아버지와 동생들이 육아를 함께했다.

외할아버지와 삼촌, 이모들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은 외롭지 않게 자랐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아이 곁에 머물렀고,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늘 아이를 품에 안은 듯했다.

그렇게 서로 기대며 완전체가 된 가족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어느 날,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다

낯선 반찬 봉지를 발견했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봉지에 처음 보는 반찬이 있더라구요.

이게 뭔가 해서 물어봤더니,

아들이 급식을 먹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급식도우미 선생님께 부탁해서 싸온 거예요.

그때 울컥하더라구요.”

작은 봉지 하나가 그녀를 무너뜨렸다.

그동안의 고단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아이의 작은 손길이 건네준 그 위로는

세상의 그 어떤 말보다 값졌다.

아이들은 그녀의 바람대로 곧고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딸은 든든하고 야무졌고, 아들은 애교 많고 따뜻했다.

남동생이 신발을 내밀면 누나는 묵묵히 신겨주었고,

두 아이는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그녀에게 그 모든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재산이었다.

그녀는 자녀들의 작은 관심도 놓치지 않았다.

작은 키가 걱정되던 딸을 무용학원에 보냈고,

바둑에 흥미를 보이던 아들은 바둑학원에 맡겼다.

딸은 무대를 밟으며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길을 걸었고,

아들은 마침내 프로기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예체능의 길은 곧 돈과의 싸움이었다.

“돈 엄청 많이 들었죠.

그래도 배우는 거에 있어서는 힘닿는 데까지

바라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재산은 못 물려주지만,

배울 수 있는 시기 지지해줄 수 있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딸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무용치료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어요.

그걸 그때 상황이 여의치 못해 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좋은 엄마였지만, 스스로 좋은 엄마라 자부하지 못했다.

“첫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땐가,

핸드폰이 보급되기 전인데 누나가 폰을 갖고 싶어하니까

아들이 자신이 받은 상금으로

‘누나 해주라’고 얘기할 정도로 우애가 정말 좋았어요.”

바쁜 날들 속에서도 서로 다투지 않고

우애 있게 지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은행에 데려가고,

도서관에도 데리고 다녔다.

생활은 빠듯했지만,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삶은 늘 분주했고, 때로는 고단했다.

그러나 그 고단함은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가족은 단순한 일상의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그녀는 버틸 수 있었고,

그 아이들이 웃어주었기에

그녀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녀의 전부는 가족이었다.

그 이름 하나가,

그녀의 인생을 끝까지 지탱한 가장 단단한 기적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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